[폴 볼커 美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 강연] "美6000억 달러 푼다고 불황흐름 못 바꿔…인플레만 부추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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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 양적완화 동의 못해
저금리 유지 위한 궁여지책…몇년 뒤 후유증 나타날 것
경기 회복 걸림돌은
美 소득대비 소비율 70%인데, 中은 겨우 30%…경제균형 깨져
신흥국 환율절상 불가피
수출만으론 지속성장 한계…中 위안화 갈등 스스로 해결을
저금리 유지 위한 궁여지책…몇년 뒤 후유증 나타날 것
경기 회복 걸림돌은
美 소득대비 소비율 70%인데, 中은 겨우 30%…경제균형 깨져
신흥국 환율절상 불가피
수출만으론 지속성장 한계…中 위안화 갈등 스스로 해결을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금융시장이 돌아가는 데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경기 불황이 호황으로 바뀌도록)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
폴 볼커 미국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 83)은 세계경제연구원(원장 사공일)이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최한 조찬 세미나에서 '세계경제의 재균형'을 주제로 강연했다.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된 강연은 사공일 원장과의 대담,청중과의 대화,기자회견으로 이어지며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됐다. 볼커 위원장이 한국을 찾은 건 약 15년 만이다.
그는 이날 단호한 어조로 많은 코멘트를 내놨다. 미국의 통화정책을 비판했고 신흥국들도 환율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통화정책이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의 구체적인 의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파악하지 못한 문제"라거나 "한국의 정책 담당자들 앞에서 이야기하기엔 부적절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 비판
볼커 위원장이 강단에 오르기 전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은 그를 "인플레(물가상승)라는 용을 때려잡기 위해 FRB에 간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볼커 위원장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무려 연 20%까지 올린 '인플레 파이터'로 꼽힌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도 이틀 전 미국이 6000억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에 달러를 더 풀기로 한 '2차 양적완화 조치(QE2)'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게 없는데 무언가 시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FRB가)노력한 것 같다"며 "바람직하지 않은 조치이고 (경기 회복 쪽으로) 추세를 전환하기엔 부족하다"고 잘라 말했다. "장기 금리를 낮게 유지하려는 것이지만 단기 금리가 이미 제로인 만큼 더 떨어질 것이 별로 없다"며 "이것이 통화정책으로 맞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의문스럽다"고 했다.
볼커 위원장은 "1940년대와 1950년대 FRB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FRB가 정부 채권을 정기적으로 매입했지만 규모가 달랐다"며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차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이런 통화정책의 영향은 몇 년 뒤 어떻게든 나타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을 감수해가며 경제 회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을 감안했을 때 또 한 차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자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조금 있어도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해 물가 안정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빠른 세계경기 회복 어렵다"
볼커 위원장은 세계 경기 전망에 대해 "단기적으로 낙관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빠르게 성장세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은 조금 더 기업 투자에 친화적으로 조세 제도를 수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경제에 대해 "지금 진흙탕을 헤쳐 나가는 중"이라며 "단단한 땅을 밟기 위해서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했다.
볼커 위원장은 세계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로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꼽았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소비를 덜 하면서 달러화를 계속 비축하고,미국은 소비를 계속 늘려가는 과정에서 경제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그는 "FRB에 재직하던 시절 다른 나라들이 수조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둘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미국의 소득 대비 소비율은 과거 40~60%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70%에 이른다"며 "중국은 30%에 불과한데 이런 치우침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각국이 외환보유액을 달러로 축적하는 과정이 극단에 치달으면 미국 재정적자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고도 지적했다. 볼커 위원장은 "이런 불균형 때문에 경제 회복세가 지지부진하다"며 "최근 미국 중간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크게 진 것도 국민들의 실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신흥국 환율절상 "자체 대응 필요"
볼커 위원장은 중국 등을 겨냥,신흥국의 환율 절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각국은 자국 통화정책이 어려워진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금 유입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걱정되고 경제 균형이 깨지고 있다면 환율 절상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나는 가만히 있고 다 누군가 대신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FRB의 책임은 달러의 안정성을 '국내에서'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추가 양적완화는 미국의 경제를 위한 것이며,이는 미국의 침체를 바라는 나라가 없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의 이해와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볼커 위원장은 "FRB가 달러를 무한대로 푸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며,미국보다도 신흥국들이 자체적으로 (통화 가치 문제를) 걱정하고 해결하려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중국을 겨냥해 "수출로,무역흑자만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한국이 G20 의제로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에 대해서는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이 안전망 역할을 하고,미국이 각국과 맺는 통화 스와프도 그런 역할을 한다"며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이날 세미나에서 "아시아 지역에서는 결제 통화로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가 사용될 수 있다"며 중국 위안화를 언급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폴 볼커 미국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 83)은 세계경제연구원(원장 사공일)이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최한 조찬 세미나에서 '세계경제의 재균형'을 주제로 강연했다.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된 강연은 사공일 원장과의 대담,청중과의 대화,기자회견으로 이어지며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됐다. 볼커 위원장이 한국을 찾은 건 약 15년 만이다.
그는 이날 단호한 어조로 많은 코멘트를 내놨다. 미국의 통화정책을 비판했고 신흥국들도 환율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통화정책이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의 구체적인 의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파악하지 못한 문제"라거나 "한국의 정책 담당자들 앞에서 이야기하기엔 부적절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 비판
볼커 위원장이 강단에 오르기 전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은 그를 "인플레(물가상승)라는 용을 때려잡기 위해 FRB에 간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볼커 위원장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무려 연 20%까지 올린 '인플레 파이터'로 꼽힌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도 이틀 전 미국이 6000억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에 달러를 더 풀기로 한 '2차 양적완화 조치(QE2)'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게 없는데 무언가 시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FRB가)노력한 것 같다"며 "바람직하지 않은 조치이고 (경기 회복 쪽으로) 추세를 전환하기엔 부족하다"고 잘라 말했다. "장기 금리를 낮게 유지하려는 것이지만 단기 금리가 이미 제로인 만큼 더 떨어질 것이 별로 없다"며 "이것이 통화정책으로 맞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의문스럽다"고 했다.
볼커 위원장은 "1940년대와 1950년대 FRB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FRB가 정부 채권을 정기적으로 매입했지만 규모가 달랐다"며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차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이런 통화정책의 영향은 몇 년 뒤 어떻게든 나타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을 감수해가며 경제 회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을 감안했을 때 또 한 차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자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조금 있어도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해 물가 안정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빠른 세계경기 회복 어렵다"
볼커 위원장은 세계 경기 전망에 대해 "단기적으로 낙관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빠르게 성장세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은 조금 더 기업 투자에 친화적으로 조세 제도를 수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경제에 대해 "지금 진흙탕을 헤쳐 나가는 중"이라며 "단단한 땅을 밟기 위해서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했다.
볼커 위원장은 세계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로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꼽았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소비를 덜 하면서 달러화를 계속 비축하고,미국은 소비를 계속 늘려가는 과정에서 경제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그는 "FRB에 재직하던 시절 다른 나라들이 수조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둘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미국의 소득 대비 소비율은 과거 40~60%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70%에 이른다"며 "중국은 30%에 불과한데 이런 치우침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각국이 외환보유액을 달러로 축적하는 과정이 극단에 치달으면 미국 재정적자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고도 지적했다. 볼커 위원장은 "이런 불균형 때문에 경제 회복세가 지지부진하다"며 "최근 미국 중간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크게 진 것도 국민들의 실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신흥국 환율절상 "자체 대응 필요"
볼커 위원장은 중국 등을 겨냥,신흥국의 환율 절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각국은 자국 통화정책이 어려워진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금 유입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걱정되고 경제 균형이 깨지고 있다면 환율 절상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나는 가만히 있고 다 누군가 대신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FRB의 책임은 달러의 안정성을 '국내에서'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추가 양적완화는 미국의 경제를 위한 것이며,이는 미국의 침체를 바라는 나라가 없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의 이해와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볼커 위원장은 "FRB가 달러를 무한대로 푸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며,미국보다도 신흥국들이 자체적으로 (통화 가치 문제를) 걱정하고 해결하려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중국을 겨냥해 "수출로,무역흑자만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한국이 G20 의제로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에 대해서는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이 안전망 역할을 하고,미국이 각국과 맺는 통화 스와프도 그런 역할을 한다"며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이날 세미나에서 "아시아 지역에서는 결제 통화로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가 사용될 수 있다"며 중국 위안화를 언급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