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총무팀 차장인 A씨(45)는 얼마 전 58세 정년을 맞은 선배들의 환송식에 참석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선배는 "앞으로 남은 회사생활은 은퇴까지 계획을 갖고 준비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뒤처지게 된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던졌다. 환송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A씨는 은퇴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닌 현실로 느껴졌다. 정년퇴직 후에 일어날 일을 그간 신문기사나 술자리 잡담 속에 몇 번 떠올려 본 적은 있지만 진지하게 조목조목 따져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스물여덟에 입사해 17년을 회사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해 왔고 남다른 인정도 받고 있지만 '은퇴도 정말 잘 준비해서 남보다 멋지게 회사생활을 마무리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누구와 상의할 것인가?

회사에서 마당발로 소문난 A씨지만 돈 문제만큼은 누구와 상의할지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전에 몇 번 만난 보험 영업을 하는 후배도 생각해 봤지만 좀 더 객관적인 의견이 필요했던 A씨는 인사복지팀을 찾았다. 작년에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인사복지팀 담당자가 회사 아침 조회에서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 지정된 금융회사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은퇴설계를 도와준다고 교육했던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인사복지팀 직원과 만나 보니 회사는 작년에 이미 확정급여형(DB형) 퇴직연금과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을 모두 도입한 상태였다. 업무가 바빠 설명회와 상담부스를 찾지 않았던 A씨는 별도의 신청절차가 필요하지 않은 DB제도를 적용 받고 있었다. 설명을 들어 보니 A씨 동기들 중 30%는 DB형을,70%는 DC형을 선택했다고 한다.

유형 선택이 다른 이유는 같은 해 입사한 동기지만 앞으로 예상되는 승진이나 보직 발령에 따라 임금인상률이 다르고,DC형의 경우 본인이 스스로 투자를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사람과 무관심했던 사람의 선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DC형으로 가입한 직원들의 사례

인사복지팀 담당자는 A씨에게 작년에 DC제도를 선택한 직원 3명의 사례에 관해 설명해 줬다. 우선 동료직원 B씨는 보수적 성격으로 위험부담이 적은 정기예금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률을 상회하는 금리를 보장받아 안정적인 가운데서도 추가적인 수익을 얻었다. DB형 제도에 남아있었다면 전년 말 퇴직금에 비해 3%(임금인상률)만 퇴직금이 늘어났겠지만,DC형 퇴직연금을 선택한 결과 정기예금으로 6%의 이자를 받아 3%포인트 더 추가적인 수익을 얻었다.

또 다른 직원 C씨는 물려받은 부동산이 있어 노후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어서 즉흥적으로 위험부담이 큰 해외 펀드에 투자했다. 해외의 경우 국가별로 금융위기로부터의 회복속도가 달라 퇴직연금 펀드의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다소 손실을 입어 오히려 퇴직금 규모가 줄어드는 결과를 얻었다.

직원 D씨는 재테크 경험이 많고 성격이 꼼꼼해 펀드와 국공채에 골고루 투자를 했는데 국내 경기의 빠른 회복과 장기금리의 하락추세가 맞물려 펀드와 국공채 모두 기대 이상의 수익을 얻어 임금인상률을 훨씬 상회하는 11%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1 대 1 상담을 통한 은퇴설계

다양한 DC형 투자사례를 접한 A씨는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과 호기심이 겹쳐 다소 흥분된 심정으로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 상담 부스를 찾았다. 펀드의 종류와 구체적인 수익률에 대해 성급히 묻는 A씨에게 상담을 담당한 금융회사 직원은 상품선정에 앞서 모든 퇴직연금 가입자는 자신의 성향과 여러 가지 사회 · 경제적 처지를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몇 가지 설문을 제시했다. 설문을 마친 후 A씨는 현 시점(45세)을 기준으로 예상 정년 60세까지 DB형과 DC형 제도의 퇴직금 수령액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공 받았다. 설문 결과에 따라 상담원은 A씨가 감내할 수 있는 위험 수준에 따른 목표 수익률을 보수적인 수준인 6%로 제안하고,현재 시점에서 DC형 제도로 전환할 경우 DB형에 계속 남아있는 것보다 정년시점에 약 1억원가량 많은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A씨는 회사로 돌아와 인사복지팀에 문의한 결과 과거 5년간 회사의 임금인상률이 3%내외였으며 향후에도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고,상담원이 목표 수익률로 설정한 6%가 A씨의 성향과 처지에 비해 큰 무리가 없는 수준임에 동의해 즉시 DC형으로 퇴직연금제도를 전환할 것을 결정했다.

은퇴설계 결과 4억원에 육박하는 퇴직연금과 함께 정년 퇴직한 A씨는 2억원은 자녀교육과 결혼을 위한 자금으로 남겨두고 2억원은 60세 이후 20년 확정 연금으로 수령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이에 따라 60세 이후 A씨는 약 월 130만원의 연금을 퇴직연금을 통해 수령하게 되고,65세부터는 월 100만원의 국민연금도 함께 수령하게 된다. 여기에 틈틈이 준비한 몇 가지 개인연금을 더해 최종적으로 월 300만원 이상 수령이 가능하게 돼 은퇴 이후 A씨 부부는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준수한 노후를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상담을 마친 A씨는 단지 안도의 한숨뿐만 아니라 합리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는 자신감에 벅차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통해 10층 사무실로 올라왔다. 지금 막 성공적인 은퇴설계와 DC 퇴직연금 투자결정을 마친 45세의 유능한 공기업 총무팀 차장 A씨에게 그 2~3일은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권용수 삼성증권 퇴직연금솔루션팀장 yongsoo@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