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의 금강산 관광지구는 온통 눈물바다였다. 남측의 이산가족 임봉국씨(89)는 주름이 깊게 패인 아내의 얼굴을 보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예뻤던 아내였는데…"라며 60년 동안 참았던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박상화씨(88)는 북측의 딸 준옥씨(64)를 첫 눈에 알아보고 울음을 터뜨리며 "고사리 같던 손에 주름만 가득하구나"라며 딸의 손을 놓지 못했다.

국군포로 출신 A씨는 10여개의 훈장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붉은 천을 상봉 테이블위에 활짝 펼쳐 놓았다. 남측 동생들에게 "수령님과 장군님 덕택에 잘 살고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노병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들은 2박3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또 다시 기약없이 헤어졌다. 작별상봉에서 조윤수씨(78)는 "100세까지 살 테니 오빠 걱정 마라"며 북측 여동생을 눈물로 떠나보냈다.

비록 짧은 만남이지만 60년 만에 혈육을 만난 이들은 '운'이 좋은 경우다. 아직 상봉을 기다리는 이산가족이 남한에만 8만여명에 이른다. 한때 12만8000여명이었던 상봉 신청자 가운데 이미 4만5000여명은 혈육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 70~80대 이상인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죽기 전에 혈육의 손이라도 잡아보려면 1년에 한두 차례 상봉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우리 정부가 북측에 상봉 정례화를 계속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이런 인도적인 요구에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쌀 50만t과 비료 30만t 지원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다. 겉으론 인도주의를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정치적 계산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어떤 식으로 따져 봐도 금강산 관광 및 쌀 지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본 북측 요원들까지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누가 보더라도 정치 · 이념과 무관한 인도주의 그 자체다. 취재 기간 내내 이산의 한(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북한 당국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병든 김정일이 살찐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고 혈족통치를 이어가려는 북한체제에 대한 혐오감만 커졌다.

장진모 정치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