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일하고 싶은 산업단지] 캠퍼스·보육시설 있는 '웰빙 산단' 만들어 젊은 인력 흡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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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날리는 '외딴 섬'
근로자 9만명에 주차공간 4000대…女화장실 없어 지원 꺼리는 현실
개천에서 용나는 산업단지로
대학·보금자리 주택 지어 '공장' 탈피…인력 모여들면 고용 미스매치도 해결
근로자 9만명에 주차공간 4000대…女화장실 없어 지원 꺼리는 현실
개천에서 용나는 산업단지로
대학·보금자리 주택 지어 '공장' 탈피…인력 모여들면 고용 미스매치도 해결
산업단지는 한국을 세계 14위(국내총생산 기준)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은 '견인차'였다. 세계 곳곳에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수출하는 교두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국내 제조업 생산의 60%,수출의 72%를 담당한다. 하지만 열악한 인프라와 낮은 삶의 질 등으로 여전히 '낡고 칙칙한 공단'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전문가들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 4만달러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선 국가 경제의 중추인 산업단지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김윤식 시흥시장,박봉규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김경수 지식경제부 지역경제정책관,안재화 세일전자 대표(인천 남동산업단지 경영자협의회 부회장),박영철 성결대 도시계획 · 부동산학부 교수 등 각계 관계자들과 함께 산업단지의 문제점과 발전 전략을 짚어봤다.
▼사회=산업단지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노후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
▼박봉규 이사장=현재 국가산단과 일반산단은 227곳 가운데 51곳이 조성된 지 20년이 지난 노후 단지다. 대표적 노후 단지인 인천 남동단지와 경기 반월 · 시화단지는 주차난,근로자 복지 등에서 문제가 많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는데 공단만 뒤처지면서 마치 '외딴섬'처럼 인식되고 있다.
▼안재화 대표=가장 심각한 게 주차문제다. 남동단지만 해도 근로자들이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하는 걸 상상도 못하던 시기에 만들어지다 보니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불법주차가 많다 보니) 비상시 소방차가 다닐 공간조차 없을 정도다.
▼김윤식 시장=시화단지에서 일하는 근로자만 9만명인데 주차공간은 4200대뿐이다. 다른 인프라도 열악하다. 시흥시는 종합일자리센터를 통해 여성 근로자들이 산업단지 입주 기업에 취업하도록 지원하고 있는데 현장에 가보면 여자화장실이 없어 지원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사회=기존 산업단지 관리의 문제점은.
▼박영철 교수=초창기부터 산업단지는 산업시설 중심으로 설계됐다. 단지 내 산업시설 비율이 70% 이상이다. 이렇게 시설 비중이 높다 보니 도로를 새로 놓기도 힘들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구조 고도화 사업도 아파트형 공장 등 시설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교통정체 등 문제가 심각하다.
▼김 시장=재정 문제도 크다. 산업단지 조성은 국가가 맡지만 관리는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한다. 그런데 지자체가 거두는 지방세 수입은 턱없이 부족하다. 시흥시만 해도 시화단지에서 160억원 정도의 세금을 걷는데 도로 유지 · 보수 등에 들이는 예산을 감안하면 큰 적자를 보고 있다.
▼사회=정부가 노후 산업단지를 업그레이드하려는 'QWL 밸리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뭔가.
▼김경수 정책관=과거 산업단지 정책이 물질적 투자 위주였다면 QWL밸리 계획은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산업단지를 재설계하고,사람과 일자리 중심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3년간 정부,민간자본,지자체가 1조3700억원가량을 투입한다.
▼김 시장=예산 규모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박 이사장=반월 · 시화단지처럼 공장이 많은 지역은 국세의 일부를 해당 지자체에 더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여수산업단지처럼 대형 트레일러가 많이 지나다니는 곳은 지자체들의 도로 보수 비용 부담이 크다. 지자체 사이에서 산업단지에 아파트를 지어 취득 · 등록세를 걷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시장=사실 지자체 입장에선 산업단지보다 경마장 하나 들어오는 게 더 좋다. 국가공단이 들어선 지자체에는 지방교부세를 더 늘려줘야 한다.
▼사회=산업단지가 공급 과잉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박 교수=현재 전체 산업단지 부지의 20% 정도가 미분양 상태다. 그러나 산업단지는 한 나라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그릇'이다. 필요하다고 해서 금방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국가 산업단지는 3년치 정도 미리 확보해 놓아야 한다.
▼안 대표=지방과 수도권 간 '미스매치'가 있다. 남동단지만 해도 분양가가 비싸지만 지방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항구 등 접근성이 좋은 데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선 인력 채용이 힘들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공급 과잉은 아니다. 수도권과 구미 포항 광주 군산 등지에선 땅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김 시장=시화단지도 지방으로 가지 않으려는 기업들이 몰리면서 분양가가 조성 초기 평당 50만원에서 지금은 42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인구 고령화 시대를 맞아 앞으로 기업을 유치하지 못하는 도시는 공동화될 수밖에 없다. 시흥시는 그래서 부천시 광명시와 함께 시 경계에 위치한 자투리 부지를 산업단지로 만들려 한다.
▼사회=산업단지의 '고용 미스매치'도 심각하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안 대표=생산직 근로자와 고급 기술인력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중소기업은 불안정하고 임금도 잘 안 나온다는 부정적 이미지 탓이다. 심지어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장가 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남동단지 입주 기업들은 전문계고교 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중소기업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실습도 하게 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박 이사장=산업단지에 근로자들이 퇴근 후 석사 ·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는 대학이 없는 게 문제다. 지경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은 내년에 산업단지 안에 산학융합지구를 만들려 한다. 근로자들이 회사에 다니면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배우고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박 교수=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고 이를 기반으로 창업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도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산업단지를 '개천에서 용나는 곳'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김 정책관=과거 대기업-중소기업 간 고용 미스매치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지역 간 미스매치도 심각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도시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업단지에도 가길 싫어한다.
▼사회=바람직한 업그레이드 방향은 무엇인가.
▼김 시장=산업단지 구조 고도화는 단지 내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실천 가능한 배려가 필요하다. 예컨대 주차공간이 부족해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면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탈의실 샤워실 등도 같이 만드는 세심함이 뒷받침돼야 실효성이 있을 것 같다.
▼안 대표=산업단지 입주 기업에 구직자들이 몰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주거 문제 때문이다. 산업단지 인근에 짓는 보금자리주택을 근로자들에게 공급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면 한다.
사회=남궁 덕 과학벤처중기부장 nkduk@hankyung.com
정리=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