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티넥에 사는 존 닐씨(49)는 직장을 잃고 2년 넘게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다. 모기지를 제때 상환하지 못해 주택은 사실상 압류된 상태이고 전기료 체납으로 전력회사에서 지난 6월에 이어 최근 다시 전기 공급을 중단했다. 사회보장국을 찾아 몇 개월 만이라도 전기 공급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오는 그에게 미 중간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고 물었다.

흑인인 탓도 있겠지만 변화를 지향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해온 그는 "공화당에 하원을 내줬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반대 세력이 협력하도록 이끌어내는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닐씨는 역설적인 얘기지만 분할된 권력구조 덕분에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미국인 중 상당수는 양당 간 대치보다는 타협 정치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대통령 자신도 중간선거 직후 패배를 인정하며 "이번 선거는 한 정당이,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며 초당적 국정 운용을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당파성을 극복하는 정치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의료보험 등 각종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양당 간 대치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집권 초반기부터 소통과 타협보다는 항상 명분만을 앞세운 급진적인 개혁으로 공화당을 압박했다. 중간선거 직전까지도 경제난의 책임을 공화당에 돌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1당 권력 독식에 대한 회의적인 인식이 널리 퍼진 이유다.

이제 오바마 대통령은 몸을 한껏 낮추면서 정책 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공화당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할 게 자명하다. 당장 실업 문제 등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테이블에 같이 앉자고 요구할 것이다. 부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 연장에서도 유연한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 노력 없이 재선은 꿈도 꾸기 힘들다.

정치 기반을 되찾은 공화당도 승리에 마냥 도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환희를 느끼기에는 현실이 절박하다. 권력의 한쪽을 쥔 만큼 앞으로 경제난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먼저 민간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사람을 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도 덜어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로비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심판을 받게 된다. 라마 알렉산더 공화당 상원의원이 민주당과 차별화하기 위해선 겸손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의 제국'저자인 존 스틸리 고든은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중간선거에서 압승한 공화당을 향해 "자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치인들이 겸손하지 않고선 타협의 정치를 실현하기 어렵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양당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꽃을 피워왔다. 좌우로 이념이 갈리면 복잡한 현실 문제를 풀기 위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이제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소통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중간선거에서 지고도 2년 뒤 재선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리처드 닉슨,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70년과 1982년 중간선거에서 크게 지고도 2년 뒤 재선했으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1994년 중간선거에서 강타당했지만 2년 뒤 재선에 성공했다. 역사는 정치인들에게 민주주의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정치 과정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