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제조업체 '찰떡궁합'으로 고속성장
울산에서 에폭시 수지를 생산하는 임종일 제일화성 대표(50)는 수지제품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울 금천구의 전기전자소재업체 신아티앤씨의 최봉구 대표(44)를 방문한다. 지난주에도 임 대표는 최 대표를 만나 생산라인에서 생긴 문제점에 대해 '훈수'를 들었다. 두 사람은 벌써 4년째 나이와 지역 차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다. 지금은 직원들도 서울과 울산을 왕래하며 한집안 식구처럼 기술 교류에 나서고 있다.

신아티앤씨는 인쇄회로기판(PCB)과 LED(발광다이오드),LCD(액정표시장치) 등의 첨단 전자기기 부품 소재에 들어가는 핵심수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로,올해 3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 대표는 "창업 당시 1억원도 채 되지 않던 매출이 4년여 만에 무려 300배나 커졌다"며 "이는 순전히 제일화성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 10월 대기업계열 화학회사 연구직을 그만두고 자본금 5000만원으로 1인 창업을 했다. 당시 자신이 국내 처음 개발한 고분자형 액상 수지를 중국 전자업체에 납품하는 계약을 맺고도 16t(시가 4000만원)의 소량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수지 제조업체들이 위탁생산을 꺼렸다. 이때 임 대표가 흔쾌히 생산을 맡으면서 두 사람은 인연을 맺었다. 주력이 송배전용 에폭시 수지인 제일화성의 임 대표는 "당시 전기전자 소재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 터에 생산 기술은 없지만 이 분야에 탁월한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을 갖고 있는 최 대표를 보고 두말없이 손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협업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제일화성은 신아티앤씨의 전기전자 소재를 생산하는 대신 신아의 연구 · 개발(R&D) 인프라를 활용해 송배전용 에폭시 수지 외에 콘크리트 접착제와 탄소섬유 보강제,자동차 모터 코일 접착제 등 고기능성 에폭시 수지를 개발할 수 있었다. 신아티앤씨는 생산을 제일화성에 맡긴 덕분에 연간 50억원 정도를 R&D에 투자,LED · LCD의 프리즘 시트에 들어가는 광학필름용 고굴절 수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게 됐다. 이 제품은 제일모직,LG화학,LG전자 등 국내 대기업과 EFUN 등 대만 굴지의 전자회사에 납품하고 있다. 이 부분의 국내시장 점유율만 60%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또 한국이 외국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PCB의 고내열 소재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두산전자와 중국,대만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2008년 38억원이던 매출은 2009년 1년 새 125억원으로 껑충 뛰었고,올 들어 9월 말 현재 매출만 233억원에 이른다. 최 대표는 모바일기기에 적용될 강화유리와 LED TV용 메탈PCB 수지제품 등 신규 사업이 본격화하는 내년에는 매출 1000억원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1991년 창업 이후 10억원을 넘지 못했던 제일화성 매출도 2006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2009년 87억원,올해 2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철도 및 송배전용 에폭시 수지 주문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데다 추가로 신아티앤씨 제품 덕분에 공장을 쉴 틈 없이 돌린 덕분이다.

두 사람은 8일 서울에서 만나 "서로의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꿰뚫고 있기 때문에 헤어지면 곧바로 공멸한다는 생각으로 화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회사는 2012년 조성 완료되는 울산의 온산 학남정밀화학 소재 단지에 합작공장을 세워 제2의 도약에 나설 계획이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