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화의 대가 변관식 화백의 그림값이 220만원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시장이 불황이라도 그렇지,거장의 작품값이 이게 뭡니까. "

최근 고미술품 전문 경매회사 아이옥션 경매장에서 한국화 경매를 지켜본 50대 미술 애호가의 지적이다. 그는 "한국화의 가격 추락은 우리 민족 자존심의 추락"이라고도 했다.
이 경매에서는 변 화백뿐만 아니라 청전 이상범,이당 김은호,의재 허백련,남농 허건 등 쟁쟁한 한국화가들의 작품값이 300만원을 넘지 못했다. 박생광의 '물고기'(110×30㎝)는 30만원에서 출발해 170만원에 낙찰됐고,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민경갑 화백의 모란꽃 그림 '부귀차수'(135×55㎝)는 60만원에 경매가 시작돼 210만원에 팔렸다.

비록 낙찰률 100%(화이트 글로브)를 기록했지만 지켜보던 사람들은 허탈해 했다. 한국화 거장들의 낙찰 가격이 신진 서양화가들의 작품 가격보다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오치균 김동유 홍경택 사석원씨 등 30~50대 서양화가의 비슷한 크기(20~30호) 작품값(2400만~3500만원)과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미술 시장에서 인기 서양화가의 작품 한 점 값이면 한국화 대가의 작품 4~5점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미술계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청담동과 인사동 등 화랑가의 한국화 외면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올 들어 갤러리현대를 비롯해 가나아트갤러리,국제갤러리,PKM갤러리,노화랑 등 대형 상업 화랑들은 한국화 전시회를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고미술 전문 화랑인 우림도 시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개점 휴업' 상태다. 컬렉터들이 '한국화는 현대식 건물에 어울리지 않아' 서양화만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대표는 "서양화에 밀려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위축된 한국화 시장이 이대로 가다가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화 시장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미술 문화를 즐기는 수요층,특히 젊은층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먼 훗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한국화 장르를 화랑과 컬렉터들이 홀대한다면 미술 시장의 활성화도 그만큼 기대하기 어렵다.

김경갑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