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존 협정문을 수정하느냐 마느냐'가 첨예한 이슈로 등장했다. 양국이 그동안 실무협의를 통해 의견접근을 본 사안을 어떤 형식으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각국의 의회 비준 과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로선 협정문을 손대지 않고 합의를 도출하는 게 최선의 과제다. 반면 미국 입장에선 구속력 있는 이행방안을 보장받길 원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8일 통상장관 회담에서 합의 내용 도출 못지않게 합의 형식을 놓고 막판까지 조율을 벌였다.

◆'협정문 수정'막판 쟁점

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월30일 기자 간담회에서 "기존 협정문에서 점 하나라도 고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과의 FTA 추가 협상을 앞두고 불거진 협정문 수정 논란을 일축한 것이다.

정부가 당초 우리쪽 요구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미국의 요구 사항 중 최소한을 수용해 협상을 조기 타결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도 이번 실무협의가 협정문 수정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이번 실무협의와 통상장관 회담에서도 합의 내용을 담는 형식으로 양국 통상장관 간 양해각서(MOU)나 부속서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급적 기존 협정문을 직접 손대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미국은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조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부 핵심 쟁점에선 협정문 본문을 수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같은 요구는 '협상 전략' 측면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도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 입장에선 한국 정부의 말을 못 믿겠다는 분위기"라며 "과거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나왔을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이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국의 요구대로 협정문을 수정하면 한 · 미 FTA 협정의 국회 통과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에선 FTA 협정문과 부속서가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협정문을 직접 손대지 않고 부속서를 고치는 것도 '협정문 수정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부속서는 협정문 본문의 조항에 따라 관세 철폐 일정 등이 담긴 문서"라며 "법적으로 협정문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차연비규제 · 안전기준 완화 가닥

한 · 미 양국은 내용적인 측면에선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협상의 최대 쟁점인 자동차 분야에서 주요 의제가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은 미국이 요구한 자동차 연비 규제 완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은 10인승 이하 승용 · 승합차의 연비를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ℓ당 17㎞ 이상' 또는 '㎞당 온실가스 배출량 140g 이하'로 맞추도록 한 한국 정부의 연비 규제가 '비관세 장벽'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왔다. 자동차 판매 대수가 연간 1만대 이하인 업체에 대해서는 연비 규제 면제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큰 틀에서 연비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구체적인 기준을 조율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업체가 자국 안전 기준에 따라 한국에 수출할 수 있는 물량(연간 6500대)을 늘리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한국 자동차 업체가 미국에 완성차를 수출할 때 수입 부품에 대해 낸 관세를 우리 정부로부터 돌려받는 관세환급제도도 한 · 유럽연합(EU) FTA 수준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한 · EU FTA에선 현재 8%인 관세환급액을 협정 발효 5년 뒤부터 5%로 제한할 수 있다.

미국의 픽업트럭 시장 추가 보호 조치는 협상 타결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자동차 업체 중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곳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양보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관세 철폐 스케줄'을 손댈 명분이 부족하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FTA 협정문은 현재 25%인 관세를 협정 발효 후 10년 내 단계적으로 철폐하도록 명시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자동차 연비 규제 및 안전 기준 완화와 관세환급 축소만 얻어내도 미국 측으로선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라고 말했다.

주용석/서기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