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미국이 6000억달러에 이르는 2차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하면서,하루 앞으로 다가온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환율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각됐다. 미국의 발표 직후 중국과 브라질은 미국의 통화량 증가 조치에 대한 해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며,일본은 5조엔 규모의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일본판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사실 이번과 같은 환율갈등 사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1차 환율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는 1971년에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는 이른바 '닉슨 쇼크'가 원인이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각국이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해 고정환율을 적용하되 금 1온스당 35달러에 거래할 수 있는 금본위 제도이다. 이는 미국의 재정악화에 프랑스 등 일부 국가가 금태환을 요구하자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붕괴됐고 이후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된다.

2차 환율전쟁은 1980년대 중반에 일어났는데,당시에도 미국의 적자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던 반면 일본과 독일은 사상 최대의 흑자를 달성하고 있었다. 이런 국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엔화와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는 플라자 협정이 체결됐다. 이후 달러 가치는 향후 2년간 30% 이상 하락하면서 미국내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으나,일본 경제는 엔고 불황에 시달렸으며 이는 거품경제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 상황은 '3차 환율전쟁'이라 부를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현상이 발생하자,나라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재정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정 및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무역수지 개선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국가들은 자국 통화 가치 절하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환율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심화되고 있는 무역불균형의 원인을 중국 등 신흥 흑자국의 통화가치가 저평가돼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중국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낮은 저축률과 과소비 구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두 강대국 간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경주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각국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한 의견이 제시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수준을 4% 이내로 유지하기로 한 합의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명문화되지 않아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를 지녔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던 차에 미국의 이번 양적완화 조치는 환율전쟁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이 추가적으로 막대한 달러의 공급을 통해 달러화를 절하시키려 압력을 행사한다면 중국이 미국을 환율조작국으로 규정하고 보복성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로 대응할 우려가 있다. 이는 과거 세계대공황 직전의 상황처럼 관세전쟁에 의한 세계 무역의 위축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며 국제무역 전문가들도 이를 경고하고 있다.

그러기에 G20 정상회의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G20 정상회의는 이러한 환율갈등에 얽혀 있는 당사자들이 서로의 주장만 고집하는 자리가 아닌,다양한 참여자가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신뢰할 만한 합의를 도출하는 장이 돼야 한다. 여기서 G20 의장국인 우리나라는 '환율전쟁' 속에서 글로벌 경제안정을 이끌어내는 평화유지군으로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과도하게 유입되고 있는 유동성에 유의하며 자산버블이 일어날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긴장감이 도는 국제정세 속에서도 G20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면 지금의 위기는 우리나라의 국격을 한 단계 격상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