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말랑말랑하고,적과 싸워보기도 전에 피해가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책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넘어서고 싶은 강력한 적을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모습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가장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

소설가 김탁환씨(42 · 사진)가 백두산 백호(白虎) '흰머리'와 개마고원 최고의 포수 '산'의 7년에 걸친 추격과 복수를 그린 두 권짜리 신작소설 《밀림무정》(다산책방 펴냄)을 내놓았다.

호랑이의 야성과 생태,개마고원 일대의 밀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문체는 강하고 박진감 넘친다.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선언하고 전쟁으로 치닫던 1940년이 시간적 배경이다. 1권이 자연 속에서 두 강자의 추격과 대결을 그렸다면 2권은 일본 해수격멸대에 의해 포로로 잡힌 백호가 경성(서울)의 창경원(현 창경궁)으로 옮겨진 이후다.

"호랑이에게 밀림은 자유이고 도심이 공포이듯 인간에게는 반대잖아요. 누군가의 자유와 공포가 부딪히는 순간을 나비의 두 날개처럼 펼쳐 써보고 싶었어요. 마침 소설을 쓰는 동안 호랑이 한 마리가 서울시청 건물 위에 서 있다가 뛰어내려 전차를 따라 질주하는 꿈을 꿨죠.진짜 날 것,야생의 삶,인간의 공포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

10년간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매주 12시간씩 문예창작 관련 수업을 맡으며 교수와 작가를 병행했던 김씨는 전업 작가로 변신한 후 호랑이 이야기에 18개월을 쏟아부었다. 평소 좋아하던 백석 시인의 삶을 훑어보다가 그가 1940~1942년 만주에 머물렀고,러시아의 문호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단편집 《만주의 계곡》 중 '식인호'를 번역한 사실에서 영감을 얻은 것.작년 4월부터 자료 조사와 구상,초고 집필,퇴고에 6개월씩 배정했다.

"일제시대에는 '해수 구제' 또는 '맹수 구제'라는 명목으로 조선총독부가 호랑이 사냥을 주도했어요. 배경으로 1940년을 택한 이유는 그해 7월에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선언하고 세계대전에 편입되는데 전쟁을 향한 외부의 야만성과 내부의 야만성을 중첩시키고 싶었죠.또 그해 북한 지역에서 마지막 호랑이가 잡혔다는 총독부 기록도 있어요. "

김씨는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로부터 여러 자문과 감수를 받았다. 이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범보전기금의 도움으로 러시아 야생 호랑이가 서식하는 지역을 찾아 실제 호랑이의 흔적을 쫓았다.

김씨는 《나,황진이》 《불멸의 이순신》 등 인기 드라마로 만들어진 소설의 원작자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