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예산국회가 극적으로 정상화됐다. 여야 6당 원내대표가 기업형슈퍼마켓(SSM)법안과 검찰수사 관련 긴급 현안질의 등의 쟁점을 놓고 한발씩 양보하면서 파국을 면했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입법로비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압수수색 여파로 경색국면으로 치닫던 국회 운영이 정상궤도로 돌아온 것이다.

여야가 SSM규제 관련 법안인 유통법과 상생법을 각각 10일과 25일 본회의에서 분리 처리키로 함에 따라 지난 4월 상임위 처리 이후 7개월 동안 표류해온 2개 법안 모두 이달 중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 유통법은 전통상가 500m 이내 지역의 SSM 진출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이고,상생법은 SSM의 일반 골목상권 진입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여야는 이와 함께 민주당이 검찰의 청목회 입법로비 수사와 관련해 긴급소집을 요구한 국회 현안질의를 10일 유통법 처리에 앞서 여야 동수로 하기로 했다. 대신 민주당은 예산심사를 위한 상임위에 정상 참여키로 했다. 민간인 사찰 관련 '대포폰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 등은 추후 논의키로 했다.

교착상태에 빠진 SSM법안을 비롯한 쟁점들이 패키지로 타결된 데 대해 여야 모두 모처럼 정치권이 협상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여당은 분리처리를,민주당은 현안질의를 관철시킴으로써 윈윈한 것이다. 여기에는 SSM법안이 장기표류하면 여야 모두 비판을 면키 어렵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당초 민주당은 유통법과 상생법의 동시처리를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선 유통법,후 상생법 처리 입장을 고수해 진통을 겪어왔다. 합의처리가 물건너가는 듯하던 SSM법의 돌파구는 뜻밖에 청목회 입법로비에 대한 검찰의 국회의원 사무실 압수수색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민주당은 지난 7일 청목회 관련 긴급 현안질의를 위한 본회의 소집을 여당에 요구했다. 이에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현안질의를 받을 수 있지만 더 다급한 유통법을 처리해 주고 예산 상임위도 예정대로 참여해달라"고 맞섰다.

유통법만 처리하고 상생법을 처리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야당의 의혹에 대해선 "원내대표로서 상생법도 책임지고 처리하고,원한다면 처리 기한도 당초 12월2일에서 앞당길 수 있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나서 "상생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을 민주당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원내대표와 총리의 '이중 보증수표'를 받아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후 의원들을 만나 SSM분리 처리를 수용하고 긴급 현안질의를 받아내는 안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박 원내대표 측은 "중소상인들이 유통법이라도 먼저 통과시켜달라고 하고 여당 원내대표와 총리가 상생법 통과를 확약한 마당에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며 "한나라당 안에서 민주당에 양보만 한다는 지적을 받는 김 원내대표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긴급 현안질의라는 실리를 얻어낸 협상"이라고 말했다.

김형호/구동회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