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1400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통화당국의 2차 양적완화 방침으로 세계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금과 원유 등 상품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8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12월물은 5.5달러(0.4%) 오른 온스당 1403.2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금값이 정규 거래에서 온스당 14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규 거래가 끝난 후 열린 전자 거래에서는 한때 1411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금값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온스당 200달러 선이었다. 10년 만에 7배나 뛰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차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한 지난주 이후에만 6% 올랐다.

국내 금값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9일 서울 종로 귀금속시장에서 순금(24K) 3.75g(한 돈) 도매가격은 전날보다 1100원 오른 20만6800원(부가가치세 포함)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FRB의 '2차 양적완화'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위험분산 차원에서 금 투자 수요가 늘었다. 수키 쿠퍼 바클레이즈캐피털 애널리스트는 "중기적으로 양적완화 조치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귀금속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의 금본위제 도입 주장 발언이다. 그는 지난 7일 "새로운 형태의 금본위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러나 엔화 유로화 등의 주요국 통화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발언은 투기세력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까지 시장에 뛰어드는 명분이 됐다. 스웨덴 SEB은행은 9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환율 전쟁이 지속된다면 주요국 통화 가치에 대한 불신감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이는 금값 상승에 더없는 호재"라고 진단했다.

금값은 당분간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상승 동력이 워낙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경기불확실성으로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지속되는 데다 통화가치 약세 등으로 현물자산인 금을 비롯한 귀금속 가치가 상대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크레이그 로스 시카고 아펙스선물 부회장은 "금값 상승세는 최소한 온스당 1500달러가 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건은 어느 정도의 조정을 거칠 것이며,어느 선까지 오를 것인가이다. 로스 부회장은 "일단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으로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조정폭은 50~2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달러 강세 반전 등 다양한 외부 변수에 따른 가격 급등락 등의 변동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케빈 커 커모디티와치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워낙 민감하게 흘러가고 있어 단순 조정이 아니라 패닉에 가까운 급락 가능성도 있다"며 "투자자들은 시장 변동성에 민첩하게 대응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