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건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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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멋져'(당당하게 신나게 멋있게 져주며 살자),'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눕시다),'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재건축'(재미있게 건강하게 축복하며 살자),'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변사또'(변치 말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시다).
각종 회식에서 자주 쓰이는 건배사다. 술자리는 물론 식사 위주 모임에서도 참석자 모두 잔을 채워 부딪치는 '건배(乾杯 · 잔을 비우다)'와 그에 따른 건배사 나누기가 유행이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건배사 한마디는 좌중을 금세 격의없고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건배사의 내용은 다양하다. 모인 이들의 건강과 행복,발전을 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쓰이는 단어는 시대와 세태를 반영,수시로 바뀐다. 지난해 '오바마'(오로지 바라옵건대 마음먹은 대로 이루소서)와 소녀시대(소중한 여러분의 시간에 잔 대보자)가 유행한 것 등이 그것이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통통통 · 쾌쾌쾌'(의사소통 · 만사형통 · 운수대통,유쾌 · 상쾌 · 통쾌)가 있는가 하면 '불광불급'(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적선여경'(積善餘慶 · 선을 쌓는 집안에 경사가 있다) 같은 사자성어도 있고,'하쿠나 마타타'(괜찮아 다 잘 될거야) 같은 스와힐리어도 쓰인다.
건배사는 하는 이의 품위와 인격을 반영한다. 너무 길면 듣기 곤혹스러운 건 물론 보기 민망하고,판에 박힌 건배사는 싱겁고,지나치게 야하면 분위기를 썰렁하고 어색하게 만들 수 있다. 전체적인 뜻은 괜찮아도 축약어의 어감이나 의미가 좋지 못하면 그 또한 무안하다.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 행사의 단장을 맡았던 이가 우리측 기자단과 가진 만찬 간담회에서 부적절한 건배사를 해 물의를 빚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였다는 건데 하고 많은 건배사를 두고 왜 하필 그런 성희롱적 내용을 고를 수밖에 없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적 건배사가 등장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음담패설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거나 불쾌감을 준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무심코 내뱉기 때문이다. 가난보다 무서운 건 가난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성희롱 발언보다 무서운 건 상대 혹은 참석자에 대한 배려 없이 아무데서나 함부로 이뤄지는 그 같은 발언에 익숙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부끄럽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h77@hankyung.com
각종 회식에서 자주 쓰이는 건배사다. 술자리는 물론 식사 위주 모임에서도 참석자 모두 잔을 채워 부딪치는 '건배(乾杯 · 잔을 비우다)'와 그에 따른 건배사 나누기가 유행이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건배사 한마디는 좌중을 금세 격의없고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건배사의 내용은 다양하다. 모인 이들의 건강과 행복,발전을 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쓰이는 단어는 시대와 세태를 반영,수시로 바뀐다. 지난해 '오바마'(오로지 바라옵건대 마음먹은 대로 이루소서)와 소녀시대(소중한 여러분의 시간에 잔 대보자)가 유행한 것 등이 그것이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통통통 · 쾌쾌쾌'(의사소통 · 만사형통 · 운수대통,유쾌 · 상쾌 · 통쾌)가 있는가 하면 '불광불급'(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적선여경'(積善餘慶 · 선을 쌓는 집안에 경사가 있다) 같은 사자성어도 있고,'하쿠나 마타타'(괜찮아 다 잘 될거야) 같은 스와힐리어도 쓰인다.
건배사는 하는 이의 품위와 인격을 반영한다. 너무 길면 듣기 곤혹스러운 건 물론 보기 민망하고,판에 박힌 건배사는 싱겁고,지나치게 야하면 분위기를 썰렁하고 어색하게 만들 수 있다. 전체적인 뜻은 괜찮아도 축약어의 어감이나 의미가 좋지 못하면 그 또한 무안하다.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 행사의 단장을 맡았던 이가 우리측 기자단과 가진 만찬 간담회에서 부적절한 건배사를 해 물의를 빚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였다는 건데 하고 많은 건배사를 두고 왜 하필 그런 성희롱적 내용을 고를 수밖에 없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적 건배사가 등장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음담패설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거나 불쾌감을 준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무심코 내뱉기 때문이다. 가난보다 무서운 건 가난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성희롱 발언보다 무서운 건 상대 혹은 참석자에 대한 배려 없이 아무데서나 함부로 이뤄지는 그 같은 발언에 익숙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부끄럽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