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FTA 사실상 타결] 자동차 안전기준 완화시 EU와 형평성 논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자동차 국내 안전 기준 적용을 완화하기로 방침을 결정함에 따라 한 · 유럽연합(EU) FTA와의 균형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6일 체결한 한 · EU FTA는 자동차 분야에서 한국이 다른 나라와 새로운 FTA 협정을 맺으면 '미래 최혜국 대우 조항'에 따라 EU도 혜택을 볼 수 있게 했다. EU가 "우리도 한 · 미 FTA처럼 해 달라"며 추가 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EU 집행위원회 관계자가 "한 · 미 FTA 협의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논란의 핵심,자동차 안전기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8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통상장관 회담 직후 브리핑에서 자동차 연비 규제와 안전 기준에 대해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할 뜻을 시사했다. 당초 예상됐던 연비 규제 완화 외에 그동안 거론하지 않던 자동차 안전 기준 문제도 미국의 요구사항이 관철된 것이다.

기존 한 · 미 FTA 협정문은 미국 자동차 업체가 자국 안전 기준에 따라 한국에 업체당 연간 6500대까지 수출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물량을 업체당 연간 1만대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 · EU FTA에는 이 같은 조항이 없다. 다만 '적응 기간'을 주는 차원에서 2013년까지만 EU 안전 기준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 · 미 FTA 추가 협상에서 미국 자동차가 안전 기준 부문에서 혜택을 받으면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반발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한 · EU FTA에 반대하는 상황"이라며 "EU 쪽에서도 최혜국 대우 조항에 따라 '우리도 똑같이 해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USTR도 이번 추가 협상안에서 '한 · EU FTA와 균형 맞추기'를 요구했다. 한국 자동차 업체가 미국에 완성차를 수출할 때 수입 부품에 대해 낸 관세를 우리 정부로부터 돌려받는 관세 환급을 축소하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한 · 미 FTA 협정문에는 이 같은 조항이 없는 반면 한 · EU FTA에는 현재 8%인 관세환급액을 5년 뒤 5%로 제한할 수 있게 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통상 전문가는 "한 · 미 FTA 협상이 일단 타결된 가운데 이뤄진 이번 추가 협상이 한국이 체결한 다른 FTA에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항구 팀장은 "미국 안전 기준이 한국보다 낮은 것은 아니지만 양국 간 제도가 다르다"며 "미국 입장에선 한국의 비관세 장벽을 낮췄다는 명분 확보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협정문 수정도 논란

안전 기준 완화는 협정문 수정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한국 시장에서 미국 안전 기준에 따른 수입 차량 대수는 FTA 협정문 부속서에 명시돼 있다. 연비 규제가 FTA 협정문과 무관한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속서를 바꾸면 결국 협정문을 수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 정부는 양국 통상장관 간 양해서한이나 협정문과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 부속서한(side letter) 형태로 합의문을 작성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구속력 있는 이행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최 교수는 "양해서한이나 부속서한도 정부 간 약속인 만큼 법적 효력이 있지만 향후 분쟁이 생겼을 때 분쟁 해결 절차를 밟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주용석/서기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