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미국, 자충수를 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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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달러 살포로 사면초가에…신흥국 위기 방지에 책무 다해야
내년 상반기까지 6000억달러에 달하는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 완화 정책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낳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일제히 '너 죽고 나 살자'식 정책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진정기미를 보이던 글로벌 환율전쟁이 재연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와 투기자금 유입 방지에 비상이 걸린 신흥국들도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한마디로 미국이 사면초가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결론부터 말해 FRB의 이번 양적완화는 결코 잘된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선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지부터가 미지수다. FRB는 2008년의 리먼 파산 사태 이후 1조7000억달러에 달하는 1차 양적완화를 실시했지만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상업은행의 대출도 별로 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더 풀어놓는 것은 자칫 달러 약세와 인플레만 유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 많은 학자들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FRB 내부에서조차 회의론이 나온다.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조급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FRB의 달러화 찍어내기가 달러 약세를 유발하고 원유 금 등 국제 원자재와 상품가격의 앙등을 초래해 세계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는 까닭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 정부의 공식 해명을 요구하는가 하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독일 러시아 등도 중국 입장에 동조하고 있고 일본은 미국에 맞서 5조엔에 이르는 독자적 양적완화 조치를 실시하기도 했다.
신흥국들의 불안감도 보통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국제 투기자금이 대거 유입될 것이란 점이다. 미국이 매달 풀어놓을 750억달러 중 상당 부분이 신흥시장으로 향할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상대적으로 성장률과 금리수준이 높은 데다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의 달러 유통량은 4조5000억달러에 달해 리먼 사태 이전 대비 2배로 증가했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국제부동자금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들며 신흥국 경제를 뒤흔들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다. 신흥국들로선 외풍(外風)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 브라질 태국 같은 나라들이 외화유입 방지책을 마련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고, 국제적으로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자구책만으로 실제 위기가 닥쳐도 신흥국들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거 한국의 예로 판단한다면 외환위기를 이겨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00억달러를 웃도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었지만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후에야 겨우 불안이 진정됐다. 대부분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이 한국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국제 부동자금 규모가 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지않은 장래에 국가부도 위기에 처하는 나라들이 줄이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신흥국들로선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이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화두의 하나가 되고 있지만, 상징적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세계경제질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적극적 참여가 절실하다. 기축통화국이면서도 최근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은 그런 안전망 구축에 앞장서야 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결론부터 말해 FRB의 이번 양적완화는 결코 잘된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선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지부터가 미지수다. FRB는 2008년의 리먼 파산 사태 이후 1조7000억달러에 달하는 1차 양적완화를 실시했지만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상업은행의 대출도 별로 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더 풀어놓는 것은 자칫 달러 약세와 인플레만 유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 많은 학자들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FRB 내부에서조차 회의론이 나온다.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조급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FRB의 달러화 찍어내기가 달러 약세를 유발하고 원유 금 등 국제 원자재와 상품가격의 앙등을 초래해 세계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는 까닭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 정부의 공식 해명을 요구하는가 하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독일 러시아 등도 중국 입장에 동조하고 있고 일본은 미국에 맞서 5조엔에 이르는 독자적 양적완화 조치를 실시하기도 했다.
신흥국들의 불안감도 보통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국제 투기자금이 대거 유입될 것이란 점이다. 미국이 매달 풀어놓을 750억달러 중 상당 부분이 신흥시장으로 향할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상대적으로 성장률과 금리수준이 높은 데다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의 달러 유통량은 4조5000억달러에 달해 리먼 사태 이전 대비 2배로 증가했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국제부동자금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들며 신흥국 경제를 뒤흔들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다. 신흥국들로선 외풍(外風)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 브라질 태국 같은 나라들이 외화유입 방지책을 마련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고, 국제적으로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자구책만으로 실제 위기가 닥쳐도 신흥국들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거 한국의 예로 판단한다면 외환위기를 이겨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00억달러를 웃도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었지만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후에야 겨우 불안이 진정됐다. 대부분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이 한국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국제 부동자금 규모가 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지않은 장래에 국가부도 위기에 처하는 나라들이 줄이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신흥국들로선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이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화두의 하나가 되고 있지만, 상징적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세계경제질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적극적 참여가 절실하다. 기축통화국이면서도 최근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은 그런 안전망 구축에 앞장서야 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