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 유럽연합(EU)이 그동안의 모호한 입장에서 선회해 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의사를 밝혔다.올 초 EU 등의 구제금융이 집행됐던 그리스처럼 아일랜드에도 외부지원이 실시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일각에선 한동안 진화되던 ‘P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의 재정적자 위기 전염현상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12일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 중인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이 EU는 ‘필요할 경우’ 아일랜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바로수 위원장은 “아일랜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며 “필요시 EU는 아일랜드를 지원할 준비가 돼있고 아일랜드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바로수 위원장의 발언은 아일랜드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999년 유로화 체제 출범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아일랜드 국가부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브라이언 레니헌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바로수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EU의 연대의식을 빛나게 하는 발언”이라며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이번 주 초까지만 해도 EU는 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아일랜드의 재정상황 및 향후 긴축계획 점검차 아일랜드를 방문했던 올리 렌 EU집행위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은 “아일랜드 경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며 “아일랜드 경제가 4개년 긴축계획에 따라 회복될 것”이란 ‘외교적 발언’만 내놨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외교적 진정책에도 불구,시장에서 아일랜드에 대한 불안과 의구심이 커지자 EU가 구제금융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BBC는 분석했다.BBC는 “올해 초 그리스가 외부 지원을 받았던 것처럼 아일랜드도 EU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글로벌 채권시장에선 이미 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 국채 등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가정한 가격이 매겨지고 있다” 며 “이와 함께 그리스 뒤를 이어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이 EU의 지원을 요청할 것이란 시각이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앞서 10일 아일랜드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0.5%포인트 이상 급등해 8.28%를 기록,3주 전에 비해 3%포인트 가량 급등했다.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기준 채권인 독일 국채 10년물과 수익률 차이도 6.19%포인트까지 벌어져 1999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다.

아일랜드의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98%에 이르고 있고 2분기 경제성장률이 -1.2%(전분기 대비)를 기록하는 등 경기 하강 추세가 뚜렷하다.아일랜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은행들이 대거 부실해지면서 은행권에 총 500억유로(약 7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가 재정이 급격히 악화됐다.

아일랜드 정부와 여당은 360억유로(약 55조원)로 불어난 재정적자를 향후 4년간 150억유로로 감축하는 예산안을 마련한 상태지만 야당이 이를 거부하며 조기 총선을 고집하는 등 여야가 마찰을 빚고 있다.이와 관련,패트릭 호노한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정부와 은행 기업 가계 등이 모두 위험에 노출돼 있다” 며 “IMF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경우라도 아일랜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뒤흔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