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설렁탕을 찾는 남편과 파스타를 좋아하는 아내,아침에도 밥이라야 하는 남편과 빵이면 어떠냐는 아내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음식이란 김치도 사람에 따라 맛의 기준이 다르다. 누구는 덜 익어야,누구는 시큼해야 먹는다.

중북부 출신은 깔끔하고 담백한 김치,남도 사람은 젓갈류 잔뜩 들어간 짜고 걸쭉한 김치라야 맛있다고 한다. 빵도 먹던 게 좋다 보니 미국에 유학 가서도 국내 유명 베이커리의 팥빵을 먹고 싶어 한다는 마당이다. 미국 빵은 너무 달고 느끼하다는 이유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중장년층이 동창회에 열심인 이유 중 하나가 '입맛이 같아서'라는 분석도 있다.

한식 세계화 열풍의 영향일까. 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정상 및 배우자의 오찬과 만찬 메뉴가 언론을 통해 상세히 소개됐다. 정상을 위한 식단은 두 차례 모두 한국산 식재료를 사용했을 뿐 서양식으로 조리한 퓨전 스타일,배우자를 위한 식단은 한식 위주로 구성됐다.

순수한 전통 한식은 12일 서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마련된 영부인 오찬 한 차례였던 모양이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이 준비한 궁중요리로 구절판 · 잣죽 · 잡채(애피타이저),삼색전 · 너비아니 · 야채 무침 · 신선로(메인요리)와 유자화채 · 약과(디저트) 등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들로 그동안 국빈 행사에 내놓았던 메뉴 중 반응이 좋았던 것을 모았다는 설명이다. 재료는 철원 쌀,횡성 한우,영덕 대게,완도 전복,고흥 유자,가평 잣 등 전국 특산품을 쓰고 그릇은 방짜 유기,테이블보는 한복감을 이용해 한국 고유의 맛과 멋을 알리려 애썼다는 소식이다.

각국 정상 배우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알 길 없다. 하지만 방짜 유기에 정갈하게 담긴 전통 한식은 대형 접시에 서양요리처럼 있는 대로 모양을 내 내놓는 퓨전 한식과 다른 느낌을 줬을 건 틀림없다. 일단 맛을 봐 아주 이상하지만 않으면 한번쯤 다시 먹고 싶어지기도 하는 게 음식이다.

김치 냄새에 고개를 흔들던 외국인들이 일단 맛들이고 나면 다시 찾는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음식의 맛은 만드는 이의 손맛과 그릇,장소,분위기까지 어우러져 느껴지는 것이다. 얼치기 퓨전음식으로 한국의 맛을 알릴 순 없다. 우리 그릇에 우리 식으로 담아낸 전통 한식이 돋보인 이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