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일본의 세계적 공조기업 다이킨은 '전기이중층 커패시터(EDLC)'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전해액을 개발했다. 그러나 곧바로 고민거리가 생겼다. 세계 최고 수준의 커패시터 제조 기술을 가진 회사를 고르기가 쉽지 않아서다.

다이킨은 일본 시장에 나와 있는 커패시터 제품들을 수거해 각종 데이터를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이 만든 커패시터가 마쓰시타,니쓰콘,에르나 등 일본 유수 기업 제품의 성능을 크게 앞질렀기 때문이다. 경기도 군포에 위치한 EDLC 전문기업 비나텍(대표 성도경)이 그 주인공이다. 비나텍은 다이킨과 기술협력 계약을 맺고 지난달 세계 최초로 3볼트(V)급 슈퍼 EDLC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광전자 · 대우전자부품 등을 거친 성도경 대표가 비나텍을 창업한 것은 1999년.초창기 커패시터 유통사업으로 자금을 축적한 성 대표는 2003년부터 제조에 뛰어들었다. 그는 15명의 박사급 전문가들을 앞세워 얼마 지나지 않아 원통형 EDLC 분야에서 국내 선두 자리에 올랐다.

커패시터는 전기를 저장해 출력하는 장치로 차세대 전지로 불린다. 2차전지보다 출력이 강하지만 전기 저장용량이 부족하다 보니 주로 예비 전지로 활용된다. 하이브리드카나 전기자동차의 경우 강한 출력을 필요로 하는 시동,급가속 단계에서는 커패시터를 통해 작동하고 주행단계에서는 전지를 이용하는 식이다. 수명은 전지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 2차전지의 수명은 대개 1000~2000사이클(전기가 완전 충전상태에서 소진될 때까지 횟수)이지만 EDLC는 50만사이클이어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특히 비나텍이 생산하는 원통형 커패시터는 전기차,태양열발전,풍력발전 등에 쓰임새가 많다.

비나텍이 다이킨과 공동 개발한 슈퍼 커패시터는 저장용량(3V)을 기존 최고 사양 제품(2.7V)보다 11%가량 늘린 제품이다. 같은 용량을 기준으로 하면 기존 커패시터보다 부피를 3분의 2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비나텍은 내년 3월 양산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비나텍은 커패시터 분야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 5월 우수기술제조연구센터(ATC)의 '신재생에너지용 하이브리드 초고용량 커패시터'과제 개발 주관업체로 선정됐다. 한국 세라믹기술원 등과 함께 5년간 개발에 나서며 정부지원금 30억원, 민간부담금 30억원 등 60억원을 투입한다. 비나텍의 올해 매출은 202억원,영업이익률은 18%로 예상된다.

군포=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