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의하면 남자는 양(陽) 여자는 음(陰),하늘은 양 땅은 음,낮은 양 밤은 음이다. 천지 및 주야 음양이 어두워져야(昏) 만나듯 남녀 음양도 이때 만난다. 과거엔 따라서 해질 무렵 등사초롱(燈紗草籠)에 불 밝히고 예를 올렸다. 이를 화촉지전(華燭之典)이라 한다. <김석진 '가정의례'>

실제 김홍도(1745~?)의 풍속도 '신행(新行)'을 보면 신랑과 나이가 비슷할 듯한 총각 둘이 청사초롱을 든 채 앞장서 있다. 혼인을 위해 신부집으로 향하는 신랑 일행을 담은 그림에서 청사초롱 다음은 기러기를 든 기럭아범(雁夫)이고 그 뒤를 백마 탄 신랑이 따라간다.

청사초롱은 푸른 구름무늬 비단(雲紋紗) 몸체에 위아래 붉은 천을 달아 만든 등으로 청등 · 청등롱 · 청사롱 · 청사등롱이라고도 한다. 대나무나 쇠로 만든 틀에 헝겊옷을 씌워 만든 사등롱(사초롱)의 일종으로 본래는 조선조 관리 중 정2품 이하 정3품 당상관들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정 · 종 1품은 홍사등롱,종3품 이하 당하관은 황사등롱을 썼다. 1746년 편찬된 '속대전(續大典)'에 임금의 행차 시 사초롱을 드는 등롱군의 수와 등롱의 색까지 정해놓았을 만큼 엄격했던 사초롱 사용이 일반의 혼례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초의 생산이 늘어난 18세기부터.

조선 후기 학자 이재(1680~1746)가 관혼상제에 관해 기술한 '사례편람(四禮便覽)'엔 혼례 시 2~4개의 초롱을 사용하도록 했다고 돼 있고,실학자 안정복(1712~1791)의 순암집(順菴集)에도'과거 신행에선 작은 횃불 2~4개를 뜬 봉거꾼이 앞에서 인도했는데 4개보다 2개를 쓰는 게 맞고,요즘엔 횃불 대신 촛불을 쓰는데 그도 괜찮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청사초롱은 길을 밝히고 안내하는 건 물론 환영과 혼인의 상징으로 쓰이는 화합과 조화까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등불처럼 세계의 미래를 밝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청사초롱을 공식 상징물로 내세웠던 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났다.

회의기간 내내 인천국제공항 등 곳곳에 설치된 건 물론 공문서 · 홍보물 · 차량 · 배지 · 명함에 두루 쓰였다. 청사초롱은 피츠버그 다리(미국),시엔타워(캐나다) 등 지형지물을 사용한 다른 나라 G20 회의 상징과 분명히 구분된다. 기왕 우리 전통문화를 앞장세운 만큼 한국의 이미지 상품으로 만드는 후속작업이 필요하다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