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우울증 200만명 시대…국가 경쟁력도 '시름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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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15%만 병원에서 치료
한국인 참는 정서 병 악화시켜
자살률 증가ㆍ업무 효율 저하…
日은 정신질환 검사 의무 추진
경영진 인식 변화ㆍ투자 시급
한국인 참는 정서 병 악화시켜
자살률 증가ㆍ업무 효율 저하…
日은 정신질환 검사 의무 추진
경영진 인식 변화ㆍ투자 시급
최근 삼성그룹에서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검사와 상담을 받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신건강 문제가 심화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기업을 필두로 여러 기업들이 상담센터를 개설하는 등 신속히 대처하고 있다. 과중한 스트레스는 방치할 경우 우울증을 거쳐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가 공동의 책임의식을 갖고 우울증 예방과 조기 치료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5.6%로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한국인은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1년 유병률을 2.5%로 추정해도 우울증 환자는 100만명이다. 그런데 제대로 치료받는 우울증 환자 수는 아주 적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로는 29만명에 불과하다. 이 중 지속적으로 치료받은 사람은 15만명에 불과했다. 따라서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 중 15%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나머지는 치료받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울증에 대한 지각과 표현을 잘 하지 못하고 참고 지내는 한국인의 정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인의 우울증은 다른 나라와 다른 특성을 갖는다. 우선 짜증을 잘 내고 욱하고 화가 치미는 반응이 흔하다. 다음으로 가중되는 업무 부담,서비스업 종사자의 증가 탓에 탈진증후군(burn out syndrome)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특히 중년 남성에게서 만연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진이 빠져 버린 상태로 좋고 싫은 감정 반응이 줄어들고 매사에 무덤덤하고 흥미를 잃어버린다. 대수롭지 않은 스트레스라도 그때 그때 풀지 못하고 계속 쌓이면 결국 작은 스트레스에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 우울증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연약해진 마음을 집중 공격한다. 일상의 잔 매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셋째,가면우울증이 많다. 감정은 슬프지 않으나 몸이 아픈 것이 특징적이다. 그래서 우울증임을 모를 수 있는데 우울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숨어 있어 가면우울증이라 불린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호탕하게 웃어도 속은 곪아서 썩기 때문에 스마일우울증이라고도 한다.
넷째,우울증이 높은 자살률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자살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31명,하루 평균 자살사망자 수는 42.2명으로 경제위기로 자살률이 증가했던 1999년과 비교해도 10년 만에 107%나 증가했다. 특히 한창 열정적으로 일할 20~40대 중년 남성에서의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직장 남성의 우울증은 대부분 과다한 업무량과 강압적인 인간관계에서 빚어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에서는 항시적으로 구조조정 공포가 감돌고 임직원들은 승진 경쟁,연봉제 등에 시달리고 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업무량과 책임감은 가중되는 데 반해 마음을 돌볼 시간이나 여유가 부족해진다. 더욱이 이런 사람들은 건강이 악화하거나 자녀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으면 정신적으로 빠르게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개인이 부담해야 할 치료비나 건강보험의 급여비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자살과 사직을 통한 인력 손실,결근이나 조퇴,집중력 및 업무수행 능력 저하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간접 비용도 커진다. 우울증을 앓는 근로자는 결근율이 높고 업무 효율 저하가 훨씬 심하다. 따라서 국민의 건강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영진이 근로자의 우울증을 챙기는 사회인식의 변화와 투자가 요구된다.
일본은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률이 급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내년부터 정기건강진단 항목에 정신질환 검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최근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내에 정신상담센터를 마련했지만 드러내고 찾아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임원들이 자신의 스트레스 점수를 0점이라고 보고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업들이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돕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맘 편하게 상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낫다.
인간은 싸움터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며 전진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굴종 비난 질시 갈등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싸움터에서 쓰러지고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이 불행해진다.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게 기본이다.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갖고 규칙적인 식사습관을 길러야 한다. 특히 기상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하루에 일정시간 햇빛을 쬐어 마음을 밝게 유지한다. 여가를 잘 활용해 일과 여가가 삶의 균형을 잡도록 해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도 필요하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낮은 강도로 장시간 운동하는 편이 낫다. 금연과 절주로 니코틴과 술에 의존하려는 마음을 털어내도록 한다. 산책,반신욕,수다떨기 등 기분이 좋아지는 일의 목록을 만들고 하루에 한 가지씩 실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업 차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임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체크해 신속하게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이렇게 해도 우울증이 유발된다면 정신과에서 상담 및 인지행동 치료를 받는다. 인지행동 치료는 세상과 자신,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교정하는 정신치료법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의사의 진단에 따라 항우울제 등을 처방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처럼 낮이 짧아지고 일조량이 줄면 평소에는 괜찮던 사람도 상당수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를 계절성 우울증이라 하는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 발병했다 봄이 되면서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햇빛은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일조량이 적어지면 멜라토닌이 감소해 잠을 잘 못이루고 기분도 우울해진다.
일반적인 우울증 치료를 하되 2500룩스 이상의 인공적인 빛을 쬐는 광치료도 효과적이다. 증상이 가벼우면 야외에서 운동하며 햇빛을 쬐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햇빛을 쬐면 뼈를 단단하게 하는 비타민D가 생성되고 행복감을 고양시키는 뇌속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될 수 있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