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귀신에 홀린 순간 노래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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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6명 '시인세계'서 고백
창작의 열병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귀는 두려움의 대상인가 반가운 손님인가.
문학세계사가 발행하는 시 계간지 '시인세계' 34호(겨울호)가 박희진 · 성찬경 · 정진규 · 천양희씨 등 시인 16명의 고백(산문)을 '내가 시마(詩魔)에 사로잡힌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고려 시대 이규보의 '시마를 몰아내는 글(驅詩魔文)'이나 조선 시대의 시인 최연이 쓴 '시마를 쫓아내다(逐詩魔)'에서 익히 보았던 '시를 불러오는 귀신'은 오늘날의 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김신용 시인은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아주머니의 말에서 시마를 만났다고 했다. 5년 간 재봉틀로 수의를 지으며 생활비를 모은 시인이 충북 충주와 음성 사이에 있는 가엽산의 산골마을 도장골로 이사했을 때였다.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맹인과 다름 없이 진짜 자연을 만나지 못하고 겉돌던 시절,집 뒤 산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던 마을 아낙과 집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 때 아주머니가 부끄러운 듯 내뱉은 한 마디.
"오늘 밭에서 일을 하는데요. 밭두렁에서 노는 다람쥐 두 마리가 얼마나 이쁘던지 구경하느라 한나절을 공쳤지 뭐예요. "
그날 이후 살아 있는 자연의 숨결이 시인의 내면으로 찾아들어와 몇 달 만에 50여편의 시를 낳게 했다.
고통의 순간에 시마가 찾아왔다는 시인들도 있다. 1986년 30대 후반의 직장인이던 조정권 시인은 종합신체검진에서 간암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은 간 결절을 발견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것 같던 그 때 새벽이 될 때까지 집 거실의 책상에 엎드려 시를 쓰던 날들 속에서 그는 '산정묘지'라는 연작시를 쓰게 됐다.
2002년 아픈 어머니의 병간호와 교정일을 함께 해야했던 김상미 시인은 결국 그 해 겨울 어머니의 죽음 앞에 무너지고만다. 탈진하도록 울다가 지쳐 잠들고 다시 코피를 쏟으며 책을 보던 그는 두 달만에 30여편의 시를 쏟아냈다. 시마의 힘이었다.
박희진 시인은 "시마는 아무런 예감 없이 홀연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멀리에서 보일 듯 말 듯 가까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성의를 다해 집중하라는 신호라는 얘기다.
멋모르고 시를 썼던 열일곱 살 무렵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시마의 방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장석주 시인도 "새 세 마리,바람,메아리,어둠 속에 울부짖는 고라니 따위를 상상 속에서 숙성시켜 그것들과 언어를 비벼 시를 얻겠다"고 말한다.
시마는 '특권적인 순간'이나 '영감'과 밀접하며 '반짝이는 시의 귀신'을 만나는 것 자체가 흔치 않다는 의미다. 나머지는 뼈를 깎는 노력과 쉼없는 열정의 결과라는 게 대다수의 시인들의 고백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문학세계사가 발행하는 시 계간지 '시인세계' 34호(겨울호)가 박희진 · 성찬경 · 정진규 · 천양희씨 등 시인 16명의 고백(산문)을 '내가 시마(詩魔)에 사로잡힌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고려 시대 이규보의 '시마를 몰아내는 글(驅詩魔文)'이나 조선 시대의 시인 최연이 쓴 '시마를 쫓아내다(逐詩魔)'에서 익히 보았던 '시를 불러오는 귀신'은 오늘날의 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김신용 시인은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아주머니의 말에서 시마를 만났다고 했다. 5년 간 재봉틀로 수의를 지으며 생활비를 모은 시인이 충북 충주와 음성 사이에 있는 가엽산의 산골마을 도장골로 이사했을 때였다.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맹인과 다름 없이 진짜 자연을 만나지 못하고 겉돌던 시절,집 뒤 산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던 마을 아낙과 집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 때 아주머니가 부끄러운 듯 내뱉은 한 마디.
"오늘 밭에서 일을 하는데요. 밭두렁에서 노는 다람쥐 두 마리가 얼마나 이쁘던지 구경하느라 한나절을 공쳤지 뭐예요. "
그날 이후 살아 있는 자연의 숨결이 시인의 내면으로 찾아들어와 몇 달 만에 50여편의 시를 낳게 했다.
고통의 순간에 시마가 찾아왔다는 시인들도 있다. 1986년 30대 후반의 직장인이던 조정권 시인은 종합신체검진에서 간암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은 간 결절을 발견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것 같던 그 때 새벽이 될 때까지 집 거실의 책상에 엎드려 시를 쓰던 날들 속에서 그는 '산정묘지'라는 연작시를 쓰게 됐다.
2002년 아픈 어머니의 병간호와 교정일을 함께 해야했던 김상미 시인은 결국 그 해 겨울 어머니의 죽음 앞에 무너지고만다. 탈진하도록 울다가 지쳐 잠들고 다시 코피를 쏟으며 책을 보던 그는 두 달만에 30여편의 시를 쏟아냈다. 시마의 힘이었다.
박희진 시인은 "시마는 아무런 예감 없이 홀연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멀리에서 보일 듯 말 듯 가까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성의를 다해 집중하라는 신호라는 얘기다.
멋모르고 시를 썼던 열일곱 살 무렵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시마의 방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장석주 시인도 "새 세 마리,바람,메아리,어둠 속에 울부짖는 고라니 따위를 상상 속에서 숙성시켜 그것들과 언어를 비벼 시를 얻겠다"고 말한다.
시마는 '특권적인 순간'이나 '영감'과 밀접하며 '반짝이는 시의 귀신'을 만나는 것 자체가 흔치 않다는 의미다. 나머지는 뼈를 깎는 노력과 쉼없는 열정의 결과라는 게 대다수의 시인들의 고백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