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이 한풀 꺾였다.

시장은 그동안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 8.30%을 이용하면 범현대가가 현대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왔다.

전문가들은 “현대건설 인수로 현대그룹 측은 한숨 돌렸을 것”이라면서도 “현대상선의 유상증자, 현대그룹의 유동성 문제 등이 남아있어 아직 완벽하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 순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다. 현대상선은 또 현대증권의 최대주주다. 만약 범현대가가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차지한다면 현대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는 치열한 현대상선 지분 경쟁을 벌여왔다. 표면상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는 현대중공업(우호지분 및 현대차그룹 포함 34.5% 추정)이지만 협력 관계 등을 합하면 현대그룹 측의 지분(41.68%)이 더 큰 것. 만약 범현대가가 현대건설을 인수했다면 지분이 42.8%까지 늘어나 현대그룹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현대그룹이 경영권을 안전하게 지켜냈다고 단언하긴 이르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소규모 주주의 경우 공시의무가 없기 때문에 우호지분의 물량을 완벽히 파악하긴 힘들다"며 "각자 숨겨둔 협력자가 있을 수 있어 어느 한쪽이 현대상선의 지분을 완벽하게 50%이상 얻기 전까진 모르는 문제"라고 전했다.

현대건설의 지분을 더하면 현대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은 49.98%. 그러나 의결권이 부여된 상환우선주 중 1000만주는 올해 말, 또 다른 1000만주는 내년 말에 만기가 찾아와 보유 지분이 변동될 수 있다.

현대건설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현대상선의 유상증자도 변수다.

현대상선은 지난 10월28일 3967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고 공시했다. 이에 신주 1020만주가 발행될 예정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제와서 현대중공업이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유상증자 참여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또 현대건설 인수로 현대그룹 측이 우위를 다졌다고는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우호지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누가, 얼마나 참여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

실권주를 전량 인수하기로 한 동양종금증권이 차후에 물량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현대상선 유상증자의 신주배정기준일은 오는 29일이며 청약 종료일은 12월24일이다.

전문가들은 "현대그룹 측이 무리한 현대건설 인수로 유동성 부족에 빠져 주가가 하락하면 범현대가가 추가로 주식을 매집할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정인지 기자 inj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