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의 사실상 새주인으로 낙점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대그룹이 '승자의 독배'를 들이킨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전 경쟁자였던 현대차그룹이 자기자금으로 현대건설을 인수하려 했던 것에 반해 현대그룹은 대부분 재무적 투자자(FI)를 끌어들여 인수자금을 마련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실제 이같은 우려는 증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피인수대상인 현대건설을 비롯해 현대그룹의 핵심계열사인 현대상선과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 등이 모두 장중 가격제한폭까지 폭락했다.

현대그룹은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 등 현대건설 채권단에 본입찰 제안서를 제출하기 전까지도 해외 FI 때문에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인수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한 독일 엔지니어링업체 M+W그룹이 돌연 인수전에서 발을 뺐기 때문이다.

M&A 전문가들은 앞으로 현대그룹이 해외 FI 등을 통해 끌어다 쓴 인수대금을 어떤 방식으로 갚아 나갈 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 FI들은 현대그룹의 경영권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높은 수익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일부 언론매체 등을 통해 현대그룹의 본입찰 가격이 5조원을 웃도는 큰 규모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시장의 우려는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당초 현대그룹이 인수대금으로 조달했다는 규모는 4조8000억원 가량이었지만, 실제 채권단 측에 써 낸 가격이 5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이 경우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나 인수대상인 현대건설 등을 통해 빌린 돈을 갚아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사실 4조8000억원도 현대그룹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규모인데 5조원을 넘어설 경우 '무리한 인수'였다는 지적을 피해가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 품으로 안긴 만큼 현대그룹이 어떤 방식을 통해 인수자금을 갚아 나갈 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4조원대 인수대금이면 크게 무리하지 않는 수준으로 판단해 왔는데 이 대금이 5조원을 웃돈다면 재무적으로 그룹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러한 우려는 결국 현대그룹 관련주들의 향방에 불확실성을 대폭 키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시장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재무적 해결책이 등장해야 할 것이란 주장이다.

KB투자증권 한 관계자는 "사실 인수자금이 5조원이든 10조원이든 납입할 자금력이 충분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현대그룹이 이번 M&A를 위해 사용한 돈을 몇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갚아나가야 할 경우에 처해진다면 그룹 전반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