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혁신이론의 권위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파괴적인 혁신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파괴적 혁신'이란 새로운 개념의 상품 및 서비스로 틈새를 파고들어 시장에 진입한 후 시장 전체를 장악해 나가는 경영기법을 말한다.

하지만 대기업에 비해 부족한 것이 많은 중소기업이 '파괴적 혁신전략'을 어떻게 구사할 수 있을까. 산 · 학 · 연 협력이 그 답이다. 산 · 학 · 연 협력이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파트너를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찾는 것. 시장에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가 나타나는 것을 중소기업이 감지한다는 것과 이를 실제로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대기업은 수요를 기술개발로 연결할 수 있는 재원과 인적 · 물적 자원을 갖추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가 필요한 재원을 대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연구에 필요한 인적 · 물적 자원을 제공해 중소기업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산 · 학 · 연 협력이다.

산 · 학 · 연 협력사업은 대학 · 연구소나 중소기업은 물론 정부도 득이 된다. 대학이나 연구소는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 연구개발을 수행하고,학생들에게는 산업현장과 직결된 과학기술을 가르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직원들에게 앞서가는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개발된 기술을 활용해 사업화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다. 정부는 기술개발을 통해 중소기업과 연구기관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한편 이를 통해 경제성장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산 · 학 · 연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간 6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산 · 학 · 연 협력 기술개발사업을 통해 1993년부터 18년 동안 총 6000억원을 투입해 3만여 중소기업을 지원해 왔다. 그동안 특허출원도 7000건을 넘겼다. 700여개의 부설연구소가 설치됐고 500여개 대학 교수연구실이 중소기업과의 공동 산 · 학협력실로 탈바꿈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산 · 학 · 연 협력을 통해 발달한 나라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이들 나라는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빠지지 않고 최상위권에 오르는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 됐다. 이들 나라의 성장에는 견실한 산업발전이 뒷받침됐고 그 기반에는 새로운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대학과 연구소,기업들의 협력이 있었다.

스웨덴의 시스타,핀란드의 울루테크노폴리스는 산 · 학 · 연 협력으로 만들어진 혁신적인 산업단지다. 이런 산업단지가 선진국에는 많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영국의 케임브리지 테크노폴,일본의 타마클러스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기업과 대학,연구기관과 기업 사이의 긴밀한 산 · 학 협력 네트워크가 산업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덕연구단지도 이미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는 산 · 학 · 연 혁신단지가 됐다.

산 · 학 · 연 협력이 발달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중기청은 내년도 정책방향을 다듬고 있다. 내년에는 업력 3년 이내의 창업초기 기업이 가진 잠재적 성장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들이 추진하는 기술개발 사업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개발된 기술을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급형 기술개발 지원방식을 도입해 기술개발의 생산성을 높일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와 매칭펀드로 운영하는 이 사업을 내년에는 중앙정부가 더 많은 비율을 지원함으로써 어려운 지자체의 살림을 돕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또 산업단지가 위치한 대학 등지에 중소기업의 기업부설연구소를 집적화해 산 · 학 협력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동시에 고급 인력이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여건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산 · 학 · 연 협력의 방향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벤처기업 육성분야에서 산 · 학 · 연 협력이 활성화된 것처럼 기업의 수요에 맞는 대학 교육과정을 만드는 등 인력양성에 산 · 학 · 연 협력의 무게를 둘 방침이다.

마침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로 온 나라가 한바탕 축제 분위기다. 우리나라가 세계로부터 주목받았고 우리 마음 속에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서 제 역할을 했다는 자긍심이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주역경문(周易經文)에 보면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其利斷金)'이라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예리함으로 쇠라도 자를 수 있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이 산 · 학 · 연 협력을 통해 '동반성장의 날개'를 달고 함께 날아오를 수 있도록 정부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