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수능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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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언어영역이여/찾아도 답이 없는 수리영역이여/풀다가 내가 지칠 사탐과탐이여/시험지에 남아 있는 문제 하나는/끝끝내 마저 찍지 못하였구나…/시계바늘은 10분 전에 걸리었다/못 마친 이들은 슬피 운다/떨리는 수성 싸인펜은 답지 위에 정답의 이름을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김소월의 '초혼'을 패러디한 이 시에선 문제가 안풀릴 때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수험생들에게 정답은 애타게 그리는 임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다.
수학을 패러디한 시도 여러 편이다. 수학에 부담을 느끼는 수험생들이 그 만큼 많기 때문일까. '수학아 수학아/점수를 내어라/그렇지 않으면/구워서 먹으리라.'(고대가요 '구지가')'수능날까지 수학을 우러러/한점 찍은 게 맞기를/손가락 꼽은 덧셈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수열을 사랑해야지….'(윤동주 '서시')
세상엔 사람과 수험생 두 종류가 존재한다는 우스개도 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전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수험생의 증세는 이렇단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고 남의 차를 미는 모습을 보며 최대 정지 마찰력을 생각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한랭전선인지 온난전선인지를 따진다. 무슨 이야기를 들을 때 화자의 심상을 요약하고 함축적 의미를 가진 단어를 찾는다….그렇다고 감정까지 메마른 건 아니다. '고 3이라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공부가 끝나 돌아오는/가로등 밝힌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같은 한탄을 보면 애처롭다.
아플 자유조차 없이 숨가쁘게 달려온 수능 레이스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 왔다. 살얼음판 걷듯 뒷바라지 해온 부모들도 함께 애가 타는 순간이다. 시험장으로 가는 아이들에게 '절대 긴장하면 안돼''널 믿는다' 등의 말을 삼가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대신 '그동안 고생 많았다''옷은 따뜻하게 입었니' 등의 부드러운 말로 부담을 덜어주는 게 좋다고 한다.
입시만큼 모진 제도도 드물다. 소수가 즐거워하는 반면 대다수는 실망하게 마련이다. 당장 가채점을 해보고 자책과 허탈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적지않을 것이다. 성적 서열의 어느 곳에 있든 그들은 너나없이 소중하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했으면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 멀고 험한 길 완주한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수학을 패러디한 시도 여러 편이다. 수학에 부담을 느끼는 수험생들이 그 만큼 많기 때문일까. '수학아 수학아/점수를 내어라/그렇지 않으면/구워서 먹으리라.'(고대가요 '구지가')'수능날까지 수학을 우러러/한점 찍은 게 맞기를/손가락 꼽은 덧셈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수열을 사랑해야지….'(윤동주 '서시')
세상엔 사람과 수험생 두 종류가 존재한다는 우스개도 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전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수험생의 증세는 이렇단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고 남의 차를 미는 모습을 보며 최대 정지 마찰력을 생각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한랭전선인지 온난전선인지를 따진다. 무슨 이야기를 들을 때 화자의 심상을 요약하고 함축적 의미를 가진 단어를 찾는다….그렇다고 감정까지 메마른 건 아니다. '고 3이라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공부가 끝나 돌아오는/가로등 밝힌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같은 한탄을 보면 애처롭다.
아플 자유조차 없이 숨가쁘게 달려온 수능 레이스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 왔다. 살얼음판 걷듯 뒷바라지 해온 부모들도 함께 애가 타는 순간이다. 시험장으로 가는 아이들에게 '절대 긴장하면 안돼''널 믿는다' 등의 말을 삼가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대신 '그동안 고생 많았다''옷은 따뜻하게 입었니' 등의 부드러운 말로 부담을 덜어주는 게 좋다고 한다.
입시만큼 모진 제도도 드물다. 소수가 즐거워하는 반면 대다수는 실망하게 마련이다. 당장 가채점을 해보고 자책과 허탈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적지않을 것이다. 성적 서열의 어느 곳에 있든 그들은 너나없이 소중하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했으면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 멀고 험한 길 완주한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