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의 사상 최고치(달러당 79.75엔)를 위협할 만큼 가파르게 치솟던 일본의 엔화 가치가 고개를 숙였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이후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에 대한 우려가 후퇴하면서 '달러 매도-엔화 매입' 흐름이 멈췄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전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 정책이 '달러 약세 유도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중국 인도 등 신흥국으로부터 잇달아 터져 나왔다. 이후 미국 내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미국이 신흥국의 반발 등을 우려해 추가적인 금융완화를 실행하기는 어렵고,하더라도 그 폭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관측을 배경으로 미국의 장기금리가 최근 오르고 있다. 2년 만기 국채수익률을 기준으로 보면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미국 금리-일본 금리)는 지난 15일 현재 0.395%로 2개월 만에 가장 컸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서 달러에 대한 투자매력이 되살아나 투자자들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게 최근 추세다.

1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달러당 83엔대 중반에서 거래됐다.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1일 엔화 가치가 15년반 만에 최고치인 달러당 80.21엔까지 뛰었던 것과 비교하면 보름 만에 3엔 정도 떨어진(환율은 상승) 셈이다. 엔화 가치의 사상 최고치는 1995년 4월의 달러당 79.75엔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85엔 선'까지 떨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헤지펀드 등이 엔화를 팔고,달러를 사들이면서 미국 시카고 통화선물거래소에서 최근 엔화의 순매수 규모는 정점인 10월 초보다 30% 축소됐다. 상당수 헤지펀드가 이달 말 결산기를 앞두고 있어 달러자산을 대량 매각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재정불안이 가시지 않은 유럽의 유로화도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인다. 다만 엔화 가치 하락세가 유로화를 앞질러 유로당 엔화 가치도 113엔대 후반으로 지난 주말의 111엔대에서 떨어졌다.

다양한 통화에 대해 엔화의 실질가치를 보여주는 엔화의 실효환율은 지난 16일 기준으로 이달 초 기록했던 최고 수준에서 약 3%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엔고 기조는 일단 끝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국 금융완화의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세계경제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금융완화 정책이 중도에 중단되면 신흥국에 대한 자금유입은 줄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론 신흥국이 물가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리기는 쉬워진다. 한국은행이 16일 정책금리를 4개월 만에 인상한 것도 그 같은 맥락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신흥국의 경기가 둔화되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