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프랑스 랑부예에서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6개국 정상들이 모인다. 1973년의 1차 오일쇼크로 휘청거리는 세계 경제의 장래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회동이었다. 명실상부한 선진 · 강대국들의 첫 모임이었고,G7의 출발이다. 공식적으로는 다음 해인 1976년 캐나다가 합류하면서 G7 체제가 틀을 잡는다.

처음 모였던 여섯 나라는 수백년 동안,짧게는 100여년 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식민지 개척을 통한 신제국(新帝國) 건설에 몰두하면서 세계를 나눠 지배했고 20세기 내내 열강으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막강한 군사력 또는 경제력이 그 힘의 원천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들보다 훨씬 잘 살고 광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는 흔하다. 하지만 돈 있고 힘센 선진 · 강대국은 많지 않다. 예컨대 전 세계의 250여개 국가 가운데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GDP 기준)이 3만달러를 넘는 곳은 아직 이들 여섯 나라 말고는 없다. 요즘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급속히 확장해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신흥국의 범주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올해 국민소득은 2만달러 남짓할 것으로 추정되고 남한 인구는 5000만명을 이제 넘어섰다. 국민소득을 1만달러는 더해야 선진 · 강대국의 언저리에 진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것이 아직 우리의 한계다.

그러나 우리의 1960년 국민소득은 80달러 선으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고 보릿고개 걱정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1970년대 초의 일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지금 저 형편없는 북한보다 못 살았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전혀 상상할 수 없겠지만,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종합경기장인 장충체육관은 1963년 필리핀의 원조와 그들의 기술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때 필리핀의 국민소득은 우리의 3배 수준이었다. 대한민국은 그랬다.

그런 세월을 지나 이제 우리나라는 변방의 분단국가라는 태생적 핸디캡을 떨치고 G20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세계 경제의 중심 무대에 우뚝 섰다. 그게 무슨 대수냐,더구나 환율전쟁 종식을 위한 결정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절반의 성공'을 두고 지나치게 들뜬 것 아니냐는 삐딱한 냉소주의자들도 물론 많다. 하지만 결과를 따지기에 앞서 회의를 치러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성과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강대국들의 틈새에서 생존방안을 모색하기 바빴고,걸핏하면 바깥에서 한국을 어떻게 볼까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방어적이고 수세적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는 국격(國格) 향상이니,세계경제의 새로운 규칙제정자로서의 역할이니 하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얘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우리가 당당하게 주장하고 '서울 컨센서스'를 이룬 개발의제가 대표적이다. 한국형 경제발전 모델을 개도국에 이식(移植)하고 지원하는 작업을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불과 50년 만에 우리는 이처럼 나라를 키우고 국가 위상의 일대 도약을 이룩해냈다. AFP통신은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를 '한국의 성인식'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보다 큰 대한민국'이 절실해졌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한국은 더 커져야 하는데 선진 · 강대국의 길은 아직 너무 멀다.

우리는 덩치가 커진 만큼 소프트파워에서 과연 소아적(小兒的) 상태,반(反) 선진적 그늘을 벗어났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앞으로 정치 · 경제 · 사회 모든 분야에서 바꿔야 할 게 너무 많다. 나라의 미래를 다시 얘기하고 완전한 국가 개조를 위한 새로운 국가경영의 책략(策略)을 세워야 할 때다. G20 회의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숙제다.

추창근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