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외환시장은 개장 전부터 분위기가 싸늘했다. 전날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한데다 달러에 대한 엔화와 유로화 가치가 급락한 탓이다. 중국의 긴축에다 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이 불가피하다는 소식이 겹친 결과다. 우리은행은 일일전망 자료를 통해 원 · 달러 환율이 10원 이상 뛰어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전 9시 시장이 열리자 원 · 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9원 오른 1138원50전에 거래가 시작됐다. 오후 2시까지는 외국인의 달러 매수와 국내 수출업체들의 달러매도 주문 공방으로 원 · 달러 환율은 1134~1138원 수준에서 움직였다. 오후 2시 이후엔 증시에서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에다 국내 은행권의 손절매성 달러 매수가 한꺼번에 나와 전날보다 15원40전 치솟은 1144원90전에 거래가 마감됐다. 이날 원 · 달러 환율 종가는 지난 9월28일(1146원30전)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환시장에선 서울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 이전에 형성됐던 원화강세 흐름이 바뀐 것 같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1200원 가능성도 배제 못해"

원 · 달러 환율은 지난 5월 초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로 5월 말 1250원 이상으로 치솟았지만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움직임을 계기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6000억달러 규모의 2차 양적완화를 결정하고 서울 G20 정상회의 첫날인 11일 외국자본 유입 규제가 공식적으로 언급되면서 1110원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원 · 달러 환율 흐름이 급반전한 것은 지난 12일부터다. 12일 하루에만 20원 가까이 뛰었으며 15일과 16일 소폭 상승과 소폭 하락한 뒤 17일 다시 급등했다. 4거래일 동안 원 · 달러 환율은 37원이나 올랐다.

이처럼 원 · 달러 환율이 상승흐름으로 돌아선 것은 그간 하락폭이 컸다는 점과 중국 긴축 및 아일랜드 사태를 계기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다시 강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FRB가 2차 양적완화를 발표한 이후 글로벌 시장에선 그간 달러 하락폭이 과도했다는 인식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FRB의 양적완화 직후 이슈가 된 중국의 긴축과 아일랜드 사태로 위험자산 투자심리는 크게 악화됐다.

이에 따라 유로화는 지난 5일 1.42달러를 기록했지만 이날 1.34달러대로 내려앉았다. 엔화 역시 지난 1일 달러당 80.3엔대에서 이날 83엔 중반까지 올랐다. 원 · 달러 환율은 여기에 외자유입 규제 방침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진우 NH선물 리서치센터장은 "유로화 가치는 1.30달러 수준,엔화가치는 85~87엔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원 · 달러 환율도 1200원 이상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긴축,아일랜드 문제,외국자본 유입규제 방침 등을 감안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원 · 달러 환율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엔 환율하락 전망 우세

하지만 중장기 추세로 봤을 때 원화가치는 여전히 상승(원 · 달러 환율은 하락)하고 있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우선 한국의 성장률이 올해 6% 수준에 이어 내년에도 4.5%(한국은행 전망)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는 등 견조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유로존 등의 최근 성장률이 둔화되는 모습과는 180도 다르다.

이와 더불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예상돼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3%)를 웃돌 전망이어서 정책금리(한은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금리가 높아지면 외국 투자자금 유입 등으로 환율은 하락 압박을 받게 된다.

이창선 LG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환율은 긴 추세로 봤을 때 펀더멘털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내년 평균 환율을 1070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내년 환율이 1100원 아래로 내려갈 것이며 1050원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