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수들이 관건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남녀 프로골퍼들이 국산 골프용품을 써야 국산 브랜드가 뜨고 한국골프의 위상도 높아질 겁니다. "

요즘 골프장에 가면 컬러볼이 유난히 눈에 띈다. 잔디가 노래져서 그렇기도 하지만,컬러볼 성능이 흰 볼 성능과 같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골퍼들이 애용한 결과다. 컬러볼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 국산 골프볼메이커 볼빅 대표인 문경안 회장(52 · 사진)이다.

신원CC 클럽챔피언에 오르기도 한 문 회장은 지난해 8월 볼빅을 인수했다. 철강유통업을 하던 사람이 골퍼들 눈길을 그다지 끌지 못했던 국산브랜드를 사들여 주위 사람들이 놀랐다. 당시 볼빅 볼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해외 브랜드에 크게 뒤졌다. 1년3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문 회장은 "충북 음성의 공장을 24시간 2교대로 돌려야 할 만큼 분주하다"며 "볼빅 볼의 점유율은 1년 전의 5배로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볼빅 볼 제조 기술은 세계적 브랜드에 뒤지지 않습니다. 코어(볼 중심의 핵)는 강하고,외피는 부드러운 '내강외유'형 설계기법은 특허를 갖고 있을 정도죠.그런데도 일부 골퍼와 선수들은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국산 볼을 외면합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외제선호 의식은 남아 있습니다. "

문 회장은 그래서 처음부터 고가 · 고급 볼을 만들기로 전략을 세웠다. 가격이 싸면 더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 자동차 가전제품 등 세계에서 인정받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들은 모두 비싸다는 점도 감안했다. '가격이 싼 명품은 없다'는 그의 지론도 한몫했다. 4피스 볼 '비스타' 가격을 8만원으로 책정하자 주위에서 "국산 볼이 왜 그리 비싸냐?"고 했다. 문 회장은 그럴 때마다 "인정해줘서 고맙다. 주위에 많이 선전해달라"는 말로 대응했다. 국산 볼이 외제 유명볼 가격과 비슷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골퍼들 사이에 '볼빅은 비싼 볼'이라는 인식이 심어졌고,주문도 늘게 됐다는 설명이다.

볼빅은 컬러볼에 강하다. 일제 컬러볼들은 표면이 유리처럼 번쩍번쩍하지만,볼빅 볼은 색깔만 다를 뿐 흰 볼과 질감이 같다. 문 회장은 지난해 이맘 때 해질녘에 라운드를 한 적이 있었다. 볼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컬러볼을 만들자'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적중했다. "한 박스 안에 노랑 빨강 주황 핑크 등 네 가지 색깔의 볼을 넣었지요. 네 명이 각각 다른 색 볼로 플레이하라는 배려였습니다. 컬러볼을 쓰면 멀리서도 자신의 볼임을 알 수 있으므로 거리산정이나 클럽선택 때 유리하고,그린윤곽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플레이 속도도 30분 정도 빨라져 골프장이나 캐디도 좋아하지요. "

볼빅 컬러 볼을 쓰는 선수는 배경은 장동규가 대표적이다. 로라 데이비스,폴라 크리머,미야모토 가쓰마사 등 유명 프로골퍼들도 컬러 볼로 플레이한다. 컬러 볼과 흰 볼의 성능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골프도 이제 산업적 측면을 봐야 합니다. 미국PGA와 미국LPGA투어 대회의 연간 총상금은 3억달러로 아는데 그 저변에 타이틀리스트 핑 테일러메이드 나이키 등 세계적 골프용품업체들이 있습니다. 양궁 쇼트트랙은 우리 선수들이 세계를 휩쓸면서 장비산업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골프는 안 되라는 법이 있습니까. 얼마 전 볼빅이 후원한 대학연맹 대회에서 안신애 조윤지 등 간판 프로들이 볼빅 볼로 하루 5언더파를 쳤습니다. 국산 볼의 성능을 입증한 것이지요. 선수들이 국산 용품을 쓰면 아마추어들도 따라하게 마련입니다. 볼빅이 시장점유율 1위가 되는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 문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