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이자 수필가인 양태석 화백은 화단의 '화수(畵隨)'로 불린다. 40여년간의 화업과 함께 《경험의 산책 생각의 바다》 《화필에 머문 시간들》 등 수필집 10여권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문학적 통찰력이 그의 붓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전통 한국화의 화법을 토대로 사실주의,팝아트,추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수필적인 회화'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양 화백은 1998년 에세이집 《영혼의 행복》으로 '수필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30여년 전부터 미술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해왔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세계미술연맹공모전 심사위원장,산수화회 회장,수필문학가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문인화가로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화단에서는 숭고한 자연의 미감과 신비로운 운치를 화폭에 살려내는 구상화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40여년에 걸친 화업은 문학적 테크닉과 회화의 상상력을 극대화해 한국화와 서양화의 기교를 한 화면에 일치시키는 조화로운 세계로의 도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에게 보시(報施)를 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눈의 보시'라는 점에 주목했다. "사람들에게 눈의 즐거움을 베푸는 데 그림만큼 좋은 장르는 없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화업은 진정한 보시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에게 '눈의 보시'를 많이 할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고 업장이 하나하나 소멸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화업을 '보시의 실천'으로 규정하는 그에게 그림은 치우침 없고 지혜로운 중도의 작업이다. 그냥 그리는 게 아니라 삶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풀어낸다. 그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우울한 방식보다 유쾌한 방식으로 대상을 그린다.

"캔버스 앞에 앉기 전에는 반드시 글을 써요. 영감 같은 느낌을 채집하기 위해서죠.그 묘한 순간이 느껴지면 붓을 들고 대상과 색감,형태를 드로잉하고 화면에 새로운 스토리를 입히지요. 저에게 수필문학이 치열한 삶의 무대라면 그림은 삶의 느낌을 연출하는 도구인 셈이죠."

그의 그림은 자연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과 강,계곡,꽃,바다,마을,동물 등 대자연의 울림이 화폭에서 소곤거린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방긋 웃는 꽃들이 손밑에서 자라난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23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펼치는 고희전에는 한국 전통회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가을 농촌 풍경과 꽃을 단순화된 선과 형태로 그린 근작 50여점을 내건다. (02)732-33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