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시한폭탄' 아일랜드 재정위기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섰다. 이웃 영국이 아일랜드를 돕겠다고 나선 가운데 그동안 외부 금융지원 요청에 소극적이었던 아일랜드가 구제금융 수용 쪽으로 전격 선회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며칠간 요동쳤던 글로벌 금융시장도 안정세를 보였다.

18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패트릭 호노한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회 회의가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일랜드 국영 RTE TV 등과 인터뷰를 갖고 "정부가 은행 구제를 위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수백억 유로의 구제금융 자금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고위 당국자가 구제금융 수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최근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호노한 총재가 처음이다. 아일랜드는 그동안 EU와 IMF 등의 구제금융 제안에 대해 여러 채널을 통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호노한 총재는 이번 구제금융이 시행되더라도 '만약의 경우'에만 쓰이는 비상자금(contingent funding)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사용 가능한 지원금액 규모만 공개해 금융시장을 안심시킨 뒤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호노한 총재는 이어 "미국이 2008년 이 같은 방식으로 미국 내 은행들을 지원해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호노한 총재는 그러나 지원 규모나 금리 등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아일랜드는 우리와 국토를 맞대고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아일랜드 경제의 성패에 영국의 이익이 달려 있다"며 "영국은 아일랜드를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어떤 재정적 지원이 가장 좋을지 상의 중"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오즈번 장관은 아일랜드 지원책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게 없으나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일랜드의 은행시스템이 안정화되고 경제가 잘 되는 것은 영국의 관심사"라고 덧붙였다.

EU집행위원회와 IMF,ECB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팀도 이날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도착,아일랜드 정부와 구제금융 제공 여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이들은 이번 주 안에 아일랜드 정부가 발표할 재정지출 삭감안이 채무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을지에 대한 평가를 완료할 예정이다. 올리 렌 EU 경제 · 통화정책 담당 집행위원은 "파견된 전문가팀은 아일랜드 은행의 채무가 얼마나 되고 무엇이 필요한지,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의 방안과 수단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금융 전반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FT는 전문가팀이 아일랜드 은행들을 대상으로 재무건전성 평가,즉 '스트레스 테스트'를 또다시 실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들이 최고 1000억유로로 추정되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은행 자산 매각이나 예산 삭감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FT는 전했다.

영국 정부와 EU,IMF,ECB의 적극적인 개입,아일랜드의 입장변화는 불안에 떨던 금융시장에 진정제 역할을 했다. 아일랜드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7일 0.13%포인트 하락한 데 이어 18일 오전에도 추가 하락했다. 미국과 유럽 주요 증시도 이날 일제히 상승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