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내에서 공화당을 중심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차 양적완화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벤 버냉키 의장이 직접 방어에 나섰다. 그는 추가 양적완화로 최대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의원들을 설득했다.

버냉키 의장은 17일 의회에서 상원 금융위원회 소속 의원 11명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2차 양적완화의 취지를 홍보한 것보다 대응 수위를 더 높였다. 보수성향의 경제학자,정치전략가,시장전문가 23명이 공화당과 입을 맞춰 양적완화 철회를 요구하자 정면대응에 나선 것이다.

공화당의 리처드 셸비 금융위원은 간담회가 끝난 뒤 "2차 양적완화로 향후 2년간 70만~100만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 내용을 전했다. 이 같은 분석은 보스턴연방은행 자료를 근거로 했다. 보스턴연방은행은 FRB가 6000억달러를 시중에 더 풀어 국채를 매입하면 장기금리가 떨어지고,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 2년간 실업률이 약 0.5%포인트(실업자 70만명 감소)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버냉키 의장은 "FRB는 물가안정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며 "달러 가치를 조작(절하)하려는 의도 역시 조금도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때마침 이날 오전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차 양적완화 조치의 타당성에 힘을 실어줬다. CPI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6%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해당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57년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가격변동이 심한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는 석 달째 변동이 없었다. 지나치게 물가가 낮으면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되고,투자 위축은 다시 고용 부진을 부를 수 있다. 2차 양적완화 조치는 이런 물가를 인위적으로 부추기려는 의도도 있다. FRB의 물가관리 목표는 2%다.

토머스 도너휴 미국상공회의소 회장도 버냉키를 지원했다. 그는 "2차 양적완화는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조치"라면서 "의원들이 FRB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망치지 말라"고 경고했다. 상의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에게 선거자금을 몰아줬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공화당의 2차 양적완화 비판은 여전히 이어졌다. 이날 차기 하원 의장으로 선출된 존 베이너 원내대표,원내대표로 뽑힌 에릭 켄터 하원 원내총무,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존 카일 상원 원내총무 등 공화당의 4인 지도부는 버냉키 의장에게 깊은 우려를 표시하는 서한을 보냈다. 2차 양적완화가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관계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서한에서 "2차 양적완화가 단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것이지만 달러가치에 상당한 불안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으며 자산거품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화당의 밥 코커 상원의원과 마이크 펜스 상원의원은 이 때문에 FRB의 두 가지 통화정책 목표 중 완전고용 달성을 삭제하고 물가 안정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워런 버핏은 CNBC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양적완화 조치가 큰 효과를 내지 않을 것"이라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FRB는 지난주 54억달러어치에 이어 이날 81억5400만달러어치의 국채를 사들여 양적완화를 이행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