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대신 '1원 입찰'…출혈경쟁 내몰린 제약업계
충북대병원은 이달 초 1580여종의 원내 의약품을 조달하기 위해 입찰을 실시했다. 치열한 눈치작전을 예상했던 이날 입찰은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낙찰자를 정하는 개찰 과정에서 병원과 제약도매상 등 입찰 당사자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1원 입찰' 접수가 쏟아져 최종 낙찰자를 가리는 추첨이 밤늦게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입찰에 참여한 한 제약도매상은 "제약밥 30년을 먹었는데 이 같은 덤핑 입찰은 사상초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충북대병원 입찰에서 '1원 낙찰'품목은 전체의 22%인 350여개에 달했다.

시장형 실거래가(저가구매 인센티브)제도가 지난달 전면 시행된 이후 병원 내 처방약시장에서 '1원입찰'이 속출하고 있다. 병원 측의 가격할인 요구에 국내외 제약사들이 저가출혈경쟁을 감수하고 있는 탓이다.

◆'1원 낙찰'속 새 약가제도 표류

'1원 입찰'이 확산되면서 의약품 유통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대형병원에서는 '1원'에 주는 동일 약품이 약국 등에는 상한가(보험약가)로 공급돼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불공정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향후 의약품 공급차질에 따른 소비자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현재 신약 등 단독품목은 병원 측 저가입찰 요구에 맞서 유찰되는 반면 제네릭 등 경합품목만 1원에 낙찰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병원은 보험약가 대비 싸게 공급받은 약 위주로 처방을 하게 되고,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지적이다.


◆왜 '1원 입찰'에 나서나

제약사들이 '1원 입찰'에 나서는 것은 해당약의 처방 코드를 부여받기 위해서다. 병원의사들은 입원환자에게 처방할 때와 외래환자들에게 처방할 때 동일한 코드를 사용한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입원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처방하는 원내의약품을 공짜로 내줘도,원외 처방시장에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원내처방 조제약은 2조139억원,원외처방 조제약은 11조6546억원 규모였다.

시장형 실거래제도로 인한 약가인하폭이 예상보다 낮은 것도 저가입찰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새 제도는 병 · 의원이 의약품을 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한 상한가보다 싸게 구매할 경우 차액의 70%를 병원의 인센티브로 돌려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신 제약사는 보험가격보다 저가에 입찰했을 때 그 이듬해 약가가 최대 10%까지 깎인다. 하지만 정부는 연구 · 개발(R&D)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단서를 붙였다. 연간 R&D투자액 500억원 이상이거나 R&D 투자비율이 매출의 10% 이상인 제약회사는 약가를 4% 깎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 대형제약사의 경우 저가에 입찰해도 약가 인하폭은 10%가 아니라 4%에 그친다는 얘기다.

◆제약업계 "연간 1조5000억원 손해"

익명을 요구한 제약회사 CEO는 "새로운 약가제도의 '룰'안에서 제약사들은 달리 대응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1원 입찰'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매년 10% 이내로 진행될 약가 인하와 함께 저가입찰로 이중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협회의 연구용역을 받은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새 약가제도로 인해 국내 제약산업이 연간 1조5000억원대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류양지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현재로선 입찰은 당사자 간 거래인 만큼 복지부가 관여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1원 낙찰에 따른 파장 등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보완할 사항이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 시장형 실거래가제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는 병원 · 약국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때문에 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로도 불린다. 제약사가 병원에 제공하던 불법 '리베이트'를 없애면 약가가 낮아져 환자가 저렴하게 약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란 취지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