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풍수] 地脈은 땅의 핏줄…무턱댄 개발이 환경파괴·지맥단절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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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風水)는 묘지와 집터를 정하는 등 주로 명당을 찾거나 땅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근거로 많이 이용됐다. 요즘은 좋은 기(氣)를 얻어 기업의 안정과 발전을 추구하려는 방안으로 쓰임새가 확산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길지(吉地)의 생기를 받아 복과 행운을 얻고 싶어 한다. 이것은 수천 년 인류역사에서 한결같이 사람들이 바랐던 바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개발로 많은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지방과 대도시를 막론하고 풍수적인 길지를 찾아 풍수적 효과를 얻기가 어려워졌다. 그 결과 자연의 지기가 허약하거나 풍수적인 결함이 있거나 불길한 점이 발견된 곳도 사람 힘으로 자연 형세를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새로운 길지를 구하지 않은 채,지기를 바꿔 지력을 회복시키고,편안하고 안전한 땅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비보(裨補)풍수다.
몽염(蒙恬)은 중국 진나라 장군으로 기원전 215년 흉노 정벌 때 활약이 컸다. 시황제의 명령으로 북방을 방어하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런데 나라를 순행하던 시황제가 병이 나 부소(扶蘇 · 시황제의 장자)에게 유서와 옥새를 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갑자기 죽었다. 그때 부소는 장성에 주둔하던 몽염의 군대를 감독하기 위해 북방의 상군(上郡)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이사와 조고는 유서 내용을 날조해 호해(胡亥)가 황위를 계승토록 하고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을 명하는 시황제의 거짓 조서를 보냈다.
몽염은 조서가 의심스럽다며 자결을 말렸으나 부소는 '의심하는 것 자체가 도리에 반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몽염 역시 감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는데,자기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고 한다. "내가 하늘에 무슨 잘못을 지었기에 죄도 없이 죽어야 하는가? 1만여리에 걸쳐 성을 쌓았으니 그동안 땅의 지맥을 끊은 것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죄다. "
최첨단 산업을 주도하는 A사의 공장을 조성할 때였다. 동산을 깎아 평탄한 공장 부지를 조성한 결과 수많은 지맥이 단절됐다. 땅은 속살을 드러내는 등 엄청난 환경파괴가 뒤따랐다. 백두대간의 지맥을 끊는다는 비판의 소리마저 거셌다. 공사 도중 인부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산이 훼손되면서 지신(地神)이 노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우리 조상들은 땅을 비롯해 돌이나 나무,풀 한 포기까지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이들을 잘못 건드려 재앙을 받는 것을 '동티가 난다'고 했다. 고심 끝에 A사는 지신(地神)을 위로하기 위해 위지령비(慰地靈碑)를 세웠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땅에 용서를 비는 의미가 담겼다. 이후 한 건의 사고도 나지 않았고 공사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지맥은 땅의 핏줄과도 같다. 지맥이 끊어지면 땅에서 피가 나고 땅은 아파서 운다. 그것이 지나치면 인간에게 앙갚음으로 복수를 한다고 우리 조상들은 여겼다. 이를 미신으로 치부하기보다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에 순응하던 지혜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
현대에 들어와서는 개발로 많은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지방과 대도시를 막론하고 풍수적인 길지를 찾아 풍수적 효과를 얻기가 어려워졌다. 그 결과 자연의 지기가 허약하거나 풍수적인 결함이 있거나 불길한 점이 발견된 곳도 사람 힘으로 자연 형세를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새로운 길지를 구하지 않은 채,지기를 바꿔 지력을 회복시키고,편안하고 안전한 땅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비보(裨補)풍수다.
몽염(蒙恬)은 중국 진나라 장군으로 기원전 215년 흉노 정벌 때 활약이 컸다. 시황제의 명령으로 북방을 방어하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런데 나라를 순행하던 시황제가 병이 나 부소(扶蘇 · 시황제의 장자)에게 유서와 옥새를 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갑자기 죽었다. 그때 부소는 장성에 주둔하던 몽염의 군대를 감독하기 위해 북방의 상군(上郡)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이사와 조고는 유서 내용을 날조해 호해(胡亥)가 황위를 계승토록 하고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을 명하는 시황제의 거짓 조서를 보냈다.
몽염은 조서가 의심스럽다며 자결을 말렸으나 부소는 '의심하는 것 자체가 도리에 반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몽염 역시 감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는데,자기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고 한다. "내가 하늘에 무슨 잘못을 지었기에 죄도 없이 죽어야 하는가? 1만여리에 걸쳐 성을 쌓았으니 그동안 땅의 지맥을 끊은 것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죄다. "
최첨단 산업을 주도하는 A사의 공장을 조성할 때였다. 동산을 깎아 평탄한 공장 부지를 조성한 결과 수많은 지맥이 단절됐다. 땅은 속살을 드러내는 등 엄청난 환경파괴가 뒤따랐다. 백두대간의 지맥을 끊는다는 비판의 소리마저 거셌다. 공사 도중 인부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산이 훼손되면서 지신(地神)이 노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우리 조상들은 땅을 비롯해 돌이나 나무,풀 한 포기까지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이들을 잘못 건드려 재앙을 받는 것을 '동티가 난다'고 했다. 고심 끝에 A사는 지신(地神)을 위로하기 위해 위지령비(慰地靈碑)를 세웠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땅에 용서를 비는 의미가 담겼다. 이후 한 건의 사고도 나지 않았고 공사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지맥은 땅의 핏줄과도 같다. 지맥이 끊어지면 땅에서 피가 나고 땅은 아파서 운다. 그것이 지나치면 인간에게 앙갚음으로 복수를 한다고 우리 조상들은 여겼다. 이를 미신으로 치부하기보다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에 순응하던 지혜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