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워치] 부동산·금융 올인한 '켈틱 타이거'…버블 꺼지자 '시한폭탄'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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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모범생' 아일랜드의 몰락
1990년대 '유럽의 별'
법인세 낮고 규제 완화 이점…IT·제약 등 다국적 기업 '밀물'
거품은 커지고
13배 인구 英보다 주택 건설 많아…집값 2008년 대비 60% 폭락
1990년대 '유럽의 별'
법인세 낮고 규제 완화 이점…IT·제약 등 다국적 기업 '밀물'
거품은 커지고
13배 인구 英보다 주택 건설 많아…집값 2008년 대비 60% 폭락
한때 금융과 제약,정보기술(IT) 분야 고도 성장을 바탕으로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 칭송됐던 아일랜드가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오랜 고난의 역사 탓에 자신들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민족"으로 여긴다는 아일랜드는 1990년대 이후 반짝 활황으로 지구촌의 경제 모범생으로 높게 평가받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타격으로 수난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자존심 강한 민족답게 "외부 지원은 필요 없고,경제 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해 왔지만 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때 경제 모범생으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순식간에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부동산 '몰빵 투자'가 부메랑으로
1990년대 아일랜드는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수출 증대 등으로 급성장을 거듭하며 '켈틱 타이거'라는 별칭을 얻었다. 델과 인텔,화이자 등 수많은 다국적기업이 12.5%의 낮은 법인세율과 규제 완화 등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IT와 화학,제약 분야를 중심으로 고도 성장을 이어갔다.
빈약한 농업국가였던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가난한 나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로부터 '하얀 깜둥이'로 멸시받았고,19세기 중엽 감자 마름병으로 인한 흉작으로 주식인 감자 생산이 타격을 받으면서 800만 인구 중 100만명이 아사(餓死)하고 200만명 이상이 해외로 살길을 찾아 나가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랬던 아일랜드는 21세기 초반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 수준에 이르며 자국을 식민지배했던 영국은 물론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을 앞서는 등 경제 도약을 이어갔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앞다퉈 아일랜드를 '유럽의 빛나는 별'로 칭송했다.
아일랜드의 고성장에는 부동산 경기 활황이 크게 기여했다. 부동산 붐은 아일랜드가 1999년 유로화를 채택하면서 본격화했다.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은 침체상태에 있던 독일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유로존에 저금리 정책을 시행했고,이는 독일뿐 아니라 유로존 전 지역에서 대출금리가 낮아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저금리 정책은 아일랜드에서 이례적인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이어져 2007년 아일랜드에선 인구 규모가 13배나 되는 영국보다 50%나 더 많은 수의 주택이 건설됐다. 동유럽 등지에서 이민이 늘면서 값싼 건설인력이 증가한 점도 부동산 활황에 불을 붙였고,정부는 세수 증대라는 단맛에 중독되면서 부동산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키웠다.
하지만 부동산 의존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아일랜드 주택가격은 2008년 대비 50~60%가량 폭락했고,건설업자들에 대출됐던 악성 채무가 쌓이면서 은행들의 자금 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정부는 대규모 부실대출을 안고 있는 은행권에 450억유로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다시 정부 재정에 큰 구멍이 생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대규모 공적자금 출연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도 급증,올해 재정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2%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처음엔 감자가,이번엔 유로화(유로존 저금리에 따른 부동산 버블)가 아일랜드 경제를 망가뜨렸다"(영국 일간 데일리메일)는 평가도 나온다.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의 급격한 감소도 아일랜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 지출과 세입 차이는 GDP의 12% 수준에 이른다. 13%가 넘는 아일랜드의 높은 실업률도 큰 걱정거리다. 아일랜드가 상대적으로 토종 제조업체 육성에 소홀했던 점이 위기 극복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때 아일랜드를 이끌었던 IT 산업이 대표적이다. 다국적 기업 유치에만 의존한 IT산업은 최근 다국적 기업이 임금이 더 싼 인도 등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흔들리고 있다.
◆구제금융 수용 놓고 줄다리기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수용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아일랜드가 그동안 외부 지원에 선뜻 손 벌리지 않고 줄다리기를 거듭해 왔던 배경은 수난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외세의 침입에 의한 수난의 역사를 겪은 아일랜드 국민들이 독립과 주권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강한 집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투쟁 끝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기 때문에 국민 정서상 유럽연합(EU)에 손을 벌리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는 설명이다.
앞서 아일랜드는 이 같은 독특한 국민정서 탓에 유럽통합의 시금석인 리스본조약에 대한 국민투표도 2008년 6월 1차에서 부결시킨 뒤 지난해 10월 2차 투표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외부에선 이 같은 아일랜드의 행보를 두고 비합리적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길 잃은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켜라'는 부인의 충고를 끝까지 거부하는 격"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아일랜드가 유로존 연쇄 재정위기의 불길을 끌 수 있을 만큼 외부로부터의 구제금융을 과감히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켈틱 타이거
Celtic tiger.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정보기술(IT) 분야와 금융업 호황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아일랜드 경제를 지칭하는 말.모건스탠리가 아일랜드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두고 한국 대만 등 '아시아의 호랑이'에 빗대 만든 표현이다.
자존심 강한 민족답게 "외부 지원은 필요 없고,경제 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해 왔지만 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때 경제 모범생으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순식간에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부동산 '몰빵 투자'가 부메랑으로
1990년대 아일랜드는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수출 증대 등으로 급성장을 거듭하며 '켈틱 타이거'라는 별칭을 얻었다. 델과 인텔,화이자 등 수많은 다국적기업이 12.5%의 낮은 법인세율과 규제 완화 등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IT와 화학,제약 분야를 중심으로 고도 성장을 이어갔다.
빈약한 농업국가였던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가난한 나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로부터 '하얀 깜둥이'로 멸시받았고,19세기 중엽 감자 마름병으로 인한 흉작으로 주식인 감자 생산이 타격을 받으면서 800만 인구 중 100만명이 아사(餓死)하고 200만명 이상이 해외로 살길을 찾아 나가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랬던 아일랜드는 21세기 초반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 수준에 이르며 자국을 식민지배했던 영국은 물론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을 앞서는 등 경제 도약을 이어갔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앞다퉈 아일랜드를 '유럽의 빛나는 별'로 칭송했다.
아일랜드의 고성장에는 부동산 경기 활황이 크게 기여했다. 부동산 붐은 아일랜드가 1999년 유로화를 채택하면서 본격화했다.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은 침체상태에 있던 독일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유로존에 저금리 정책을 시행했고,이는 독일뿐 아니라 유로존 전 지역에서 대출금리가 낮아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저금리 정책은 아일랜드에서 이례적인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이어져 2007년 아일랜드에선 인구 규모가 13배나 되는 영국보다 50%나 더 많은 수의 주택이 건설됐다. 동유럽 등지에서 이민이 늘면서 값싼 건설인력이 증가한 점도 부동산 활황에 불을 붙였고,정부는 세수 증대라는 단맛에 중독되면서 부동산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키웠다.
하지만 부동산 의존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아일랜드 주택가격은 2008년 대비 50~60%가량 폭락했고,건설업자들에 대출됐던 악성 채무가 쌓이면서 은행들의 자금 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정부는 대규모 부실대출을 안고 있는 은행권에 450억유로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다시 정부 재정에 큰 구멍이 생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대규모 공적자금 출연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도 급증,올해 재정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2%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처음엔 감자가,이번엔 유로화(유로존 저금리에 따른 부동산 버블)가 아일랜드 경제를 망가뜨렸다"(영국 일간 데일리메일)는 평가도 나온다.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의 급격한 감소도 아일랜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 지출과 세입 차이는 GDP의 12% 수준에 이른다. 13%가 넘는 아일랜드의 높은 실업률도 큰 걱정거리다. 아일랜드가 상대적으로 토종 제조업체 육성에 소홀했던 점이 위기 극복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때 아일랜드를 이끌었던 IT 산업이 대표적이다. 다국적 기업 유치에만 의존한 IT산업은 최근 다국적 기업이 임금이 더 싼 인도 등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흔들리고 있다.
◆구제금융 수용 놓고 줄다리기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수용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아일랜드가 그동안 외부 지원에 선뜻 손 벌리지 않고 줄다리기를 거듭해 왔던 배경은 수난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외세의 침입에 의한 수난의 역사를 겪은 아일랜드 국민들이 독립과 주권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강한 집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투쟁 끝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기 때문에 국민 정서상 유럽연합(EU)에 손을 벌리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는 설명이다.
앞서 아일랜드는 이 같은 독특한 국민정서 탓에 유럽통합의 시금석인 리스본조약에 대한 국민투표도 2008년 6월 1차에서 부결시킨 뒤 지난해 10월 2차 투표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외부에선 이 같은 아일랜드의 행보를 두고 비합리적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길 잃은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켜라'는 부인의 충고를 끝까지 거부하는 격"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아일랜드가 유로존 연쇄 재정위기의 불길을 끌 수 있을 만큼 외부로부터의 구제금융을 과감히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켈틱 타이거
Celtic tiger.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정보기술(IT) 분야와 금융업 호황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아일랜드 경제를 지칭하는 말.모건스탠리가 아일랜드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두고 한국 대만 등 '아시아의 호랑이'에 빗대 만든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