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여행] 함평엔 나비만? 쉿! 황금박쥐가 깨겠어요
모악산(348m)은 남쪽 치맛자락에 백제 무왕 1년(600년) 행은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 용천사를 품고 있다. 속향(俗鄕)이 함평인 현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선친이 한때 주지로 계셨던 절이다. 오전 5시,예불이 끝난 후 플래시를 켜고 원점회귀형 등산로를 타고 모악산에 오른다.

저 멀리서 목포의 불빛들이 반딧불처럼 명멸하고 있다. 희끄무레 먼동이 터오는 하산길에서 드넓게 펼쳐진 꽃무릇 군락을 본다. 꽃을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은 꽃무릇은 이제 겨우 한 뼘가량 잎이 돋았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花葉不相見)'는 점에서 상사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진짜 상사화는 잎도 더 넓고 꽃도 연한 홍자색이다.

아침 햇살에 드러난 용천사의 전각은 조촐하다. 대웅전 우측 팔작지붕을 닮은 지붕돌을 인 석등(1685)의 하대석을 거북이 한 마리가 용을 쓰며 기어오르고 있다. 마음속 거북을 타고 하룻밤의 안거(安倨)를 마친 용천사를 나선다.

◆우리 시대의 '까치밥' 황금박쥐

조선 태종 9년(1409년) 함풍과 모평을 합쳐서 현이 된 함평은 '두루 평평한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지보다 평야가 많은 곳이다. 추수 끝난 들판이 황량하다. 함평 쌀밥을 먹다 죽은 시체는 상여가 더 무겁다던가. 그만큼 이곳의 쌀이 질 좋다는 뜻이리라.

전통 농가를 재현해 옛 정취를 맛볼 수 있도록 한 생태체험마을인 오두마을을 지나 대동상수원지에 이른다. 저수지 위쪽 너른 억새밭이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가을을 배웅하고 있다. 1960년대 TV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황금박쥐(붉은박쥐) 수십 마리가 산다는 고산동마을로 접어든다. 독립적인 생태를 가진 박쥐가 군집생활을 한다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사진으로 본 황금박쥐는 오렌지색 작은 몸통에 검은 날개를 가졌다.

어릴 적,6 · 25 한국전쟁 때 파놓은 뒷산 방공호 속에 들어갔다가 야행성이라 시력이 좋지 않은 박쥐들이 놀라 동굴 여기저기 부딪치는 바람에 기겁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붓끝처럼 생겨 필봉이라고도 부르는 고산봉(359m)이 눈에 들어온다. 저 봉우리의 폐광 동굴에 황금박쥐가 산다는 것이다. 고산봉 일대는 생태계 보전지역이다. 황금박쥐를 찾아가는 여정을 이쯤에서 접고 빨간 담쟁이덩굴에 덮인 돌담들이 아름다운 마을 고샅을 거닌다. 이를테면 황금박쥐는 우리시대의 까치밥 같은,섣불리 엿봤다가는 영영 사라질 것 같은 신비한 전설이다.

대동면 황새골에 있는 향교로 향한다. 산지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명륜당이 대성전 뒤에 있으며 남방식 고인돌 1기도 둥지를 틀고 있는 이 향교는 꽤 특이하다. 향교초등학교 앞 대동팽나무숲(천연기념물 108호)은 불에 취약한 향교 자리의 지형적 결함을 풍수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줄나무숲이다. 2열로 줄지어 선 늙은 팽나무 · 느티나무들은 350년이라는 긴 세월을 레시피하며 살아온 시간의 요리사들 곁을 거닐면서 평온이라는 이름의 고소한 빵 냄새를 맡는다.

◆지조의 고장 함평의 아이콘 기산영수

함평읍은 기산봉 아래 자리잡고 있다. 읍내 앞을 흘러가는 함평천을 가리켜 영수라 부르니 함평읍은 기산영수인 셈이다. 임금이 되라는 말이 더러워 귀를 씻은 소부와 자신이 기르는 소에게 귀 씻은 더러운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다고 했던 허유가 살던 곳이 기산영수다. 이곳을 기산영수라 부른 것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내던지고 낙향해 영파정에서 시를 짓고 살았던 이안(1414~1474?)으로부터 비롯했다고 한다.

한때 궁도장으로 쓰였던 영파정은 폐업 중이다. 그러나 이안으로부터 이어진 함평의 깐깐한 정신은 삼평(함평 · 창평 · 남평)으로 회자되며 오늘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함평공원 비림(碑林)에는 현감,관찰사 등의 공적 · 선정비에서 뉘 속에 섞인 한 톨의 쌀처럼 척화비가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군청에서 영광으로 넘어가는 고개엔 1920년대에 건축한 이재혁 가옥이 있다. 근대 한옥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이 집의 육모정 밑 토굴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은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재혁 가옥의 왼쪽 골목길을 따라가면 보광사에 이른다. 종구가 나팔형으로 벌어진 중국형 범종이 귀를 쫑긋 세운 채 범종각에서 결부좌를 틀고 있다. 용천사에서 옮겨왔다는 이 범종은 18세기에 주조된 것으로 높이가 2.1m나 된다. 종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절 마당에 자리한 단풍나무의 수형이 예사롭지 않다.

◆폐항이 된 돌머리해변의 잔혹사

함평의 아이콘 나비축제의 공간인 엑스포공원에선 국화로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 국향대전이 열리고 있다. 국화로 만든 거대한 '숭례문'을 뒤로 한 채 석성리 돌머리해변으로 향한다. 돌머리란 물에 잠기지 않는 돌의 윗부분을 말한다. 그러나 서해의 용신(龍神)이 흉년이 들면 감춰둔 바다의 보배를 조금씩 내줘 어촌의 기근을 면하게 해주었다는 전설이 서린 '돌머리' 농바위는 굴 양식장을 만들 당시 폭파해버렸으니 이름만 남고 실경(實景)은 사라진 셈이다.

소나무 숲 사잇길을 따라 뒷개 해변으로 내려가자 모래가 고운 백사장과 썰물 때를 대비해 바닷물을 붙잡아둔 8000여㎡의 인공 해수풀장이 나그네를 맞는다. 갯벌에 갯지렁이처럼 놓인 600m의 침목다리를 따라 너른 여가 있는 곳까지 걷는다.

해수풀장 왼쪽으로 가면 돛을 형상화한 전망대와 석화양식장이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채취하는 석화는 석두마을의 주 소득원이다.

전망대 뒤의 앞개는 진흙갯벌,모래갯벌,돌갯벌이 섞인 혼합갯벌이다. 앞개 갯벌엔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물이 빠지면 걸리도록 덤장을 칠 때 박아놓은 말목이 줄지어 서 있다. 불법어로라 해서 지금은 중단한 '개매기'의 흔적이다. 석두항이 부르는 무조음(無潮音)의 적막한 엘레지를 뒤로 한 채 해변을 떠난다.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감성 여행] 함평엔 나비만? 쉿! 황금박쥐가 깨겠어요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평택→당진→서천→군산→고창 →함평IC→함평


◆맛집

'종일 두고 무쇠솥에 국물은 끓고/ 김은 피어오르고/ 시꺼매진 벽을 등에 지고 알은 체/ 보일 듯 말 듯 웃음 짓는/ 주인 아낙네/ 순대국밥 마는 일 하나로 저토록/ 늙어버린 주인 아낙네/ 내가 그동안 잃어버린 미더운/ 사람 마음과 사람의 얼굴이/ 여기 와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태주 시 '순대국밥집' 부분)

함평버스터미널 뒤 5일 장터 골목에 있는 화랑식당(061-323-6677)은 육회를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이다. 함평 우시장과 장터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선짓국 전문 식당으로도 유명하다. 기본으로 나오는 선짓국은 육회를 먹기 전 식객의 입맛을 돋워준다. 육회 비빔밥 6000원,육회 3만원(300g)


◆함평 여행 팁

'함평 큰소장'이라고도 부르는 함평장은 5일장이다. 현대식이 아니라 기와지붕에 탁 트인 난전의 형태로 열리는 함평장에서는 후한 인심이 우러나는 재래장터의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재래장터를 둘러보고 나서 함평천을 건너가면 소의 이빨을 들여다보는 등 소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살피다가 트집을 잡는 통에 벌어지는 싸움질도 전혀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 정겨운 우시장이다. 난전에서 파는 팥죽이나 순대국밥 한 그릇을 들면서 고향의 냄새를 맡으려면 장날인 2일과 7일에 맞춰 가면 된다. 우시장은 오전 5시부터 열리는데 겨울철에는 6시에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