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 · 2 교육감선거에서 당선된,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에 유난히 집착하면서 체벌금지를 강행하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2학기부터 서울시내 학교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했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민병희 강원도교육감도 체벌금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는 교사와 학생을 막론하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 핵심은 학생지도에 있다. 선생님의 권위가 제대로 서지 않는 교실붕괴 상황에서 인성교육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우려가 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전면적 체벌금지론을 내세운 교육감들은 집무실에만 앉아 있지 말고 학교현장을 한번 가보라."가정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아이들이라면 학교에서라도 잡아줘야 하지 않느냐"라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사가 야단이라도 치면 막말과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사춘기의 아이들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라는 일선 교사들의 하소연이 귀에 쟁쟁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벼운 체벌은 학교현장에서 허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학생인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권은 어디까지나 '권리'의 개념이다. 무엇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의 개념과도 다르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책임'의식과도 다르다. 다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허용'의 의미가 클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능력'의 개념이다. 만일 능력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허용만 하게 되면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십상이다. 그리스신화에서 보면 불이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몰래 가혹한 처벌을 감내하면서까지 인간의 품위있는 삶을 위해 전해줄 정도로 소중하고도 필수적인 것이지만,제대로 쓰려면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린이에게 성냥을 주는 것을 조심하는 이유는 성냥을 가졌다고 재미삼아 사용함으로써 산불이라도 내면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술과 담배를 학생들에게 금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원리다. 술과 담배는 자신의 몸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가에 대한 반성능력이 있고,또 자기절제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때 허용할 수 있는 것이지,단순히 술 담배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나머지 즐기게 되면 일그러진 인간이 된다.

바로 이것이 미성년자에게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권리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격이 성숙한 성인들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권리를 하루아침에 '선물보따리'처럼 주는 것은 잘못이다.

학교는 인성 전반에 걸친 전인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당연히 교육은 학생에게 어떤 권리를 주었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끔 미완성의 인격체를 어떻게 온전한 인격체로 만들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온전한 인격체를 만들려면 도덕적 감수성,자기반성 능력과 의무감,그리고 책임의식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돌을 던질 권리가 있다고 해서 연못을 향해 무작정 돌을 던지면 어떻게 되는가. 연못 안에 있는 개구리가 맞아 죽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심심풀이로 연못에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무심코 던지는 자신의 돌에 죄없는 개구리가 맞아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판단력이 도덕적 감수성이고 이런 감수성을 가질 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된다.

우리가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에게서 학생의 의무와 책임은 빼고 권리만 강조하는 인권운동가의 모습보다 의무와 책임,권리의식을 균형감있게 불어넣기 위해 고심하는 교육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