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 대한 구제금융 협상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독일이 잇달아 "아일랜드에서 비롯된 유럽 위기가 끝났다"는 입장을 보였다. 450억~1000억유로로 전망되는 구제금융은 조만간 공식 발표될 전망이다. 구제금융 협상은 프랑스가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아일랜드에 요구해온 법인세율 인상에서 한발 물러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재정위기가 아일랜드에 국한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특히 포르투갈이 유력한 '다음 순서'로 거론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0일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 (유로존 부채위기와 관련) 마지막 구제금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라이너 브뤼덜레 독일 경제장관도 독일 주간 포쿠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일랜드와 그리스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아일랜드 경제 붕괴가 유로존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IMF와 유로존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미국과 독일이 재정위기 전염이 차단될 것이란 견해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특히 포르투갈에 대해서는 재정위기 전염을 기정사실화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주요 외신들 역시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포르투갈로 재정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스티븐 맨셀 씨티그룹 글로벌마켓 이사의 발언을 인용,"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아도 포르투갈에 대한 우려가 줄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찰스 디벨 로이즈TSB 스트래티지스트도 "시장은 아일랜드 다음 대상을 찾을 것이며,포르투갈이 제일 앞줄에 있다"고 지적했다.

마켓워치는 "포르투갈의 금융 부문 사정이 아일랜드보다 조금 낫긴 하지만 글로벌 채권시장에선 아일랜드와 거의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언 하넷 앱솔루트스트래티지리서치 이사는 "아일랜드에서 전염 효과가 멈췄으면 하지만 투자자들은 약한 나라를 하나씩 골라내고 있다"며 "포르투갈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도 "포르투갈이 아일랜드와 구체적인 사정은 다르지만 구제금융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포르투갈이 이처럼 다음 타깃이 된 것은 경제성장 둔화가 뚜렷한 데다 재정적자가 매우 빠른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올해 1.3%에서 내년엔 0.2%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적자도 올 들어 9월까지 전년 대비 2.3% 늘었다. 같은 기간 스페인과 그리스가 재정적자를 각각 40%와 30% 이상 줄인 것과 대조적이다. 포르투갈의 올해 재정적자는 GDP 대비 7.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내년 상반기에만 110억유로의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데다,유로존 16개국 평균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1% 수준인 반면 포르투갈은 12.3%에 이를 정도로 경제가 취약하다.

시장에선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가 아일랜드,포르투갈을 거쳐 결국 스페인까지 번질지에 주목한다. 유로존 4위 경제대국인 스페인은 유로존 총생산액의 9%를 담당하고 있어 2%에 불과한 그리스,아일랜드와는 유로존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다르다. 스페인 유력 일간 엘문도는 '결국 스페인이 다음 차례인가'라는 기사에서 "아일랜드 사태가 시장에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스페인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주가 유로존 재정위기 전염 여부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