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8시30분. 서울 신문로에 있는 보육시설인 'CJ키즈빌'에 맞벌이 부부 안현구씨(34)와 김명진씨(33)가 세 살배기와 네 살배기 두 딸의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CJ제일제당에서 사내 커플로 근무하는 이들은 "회사 보육시설 덕분에 육아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안씨는 "회사가 보육시설을 직접 운영 · 관리하면서 업무에 전념할 수 있어 업무 효율도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 임직원들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돌보며 생산성을 높이는 '가족친화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원복지가 늘면 회사 경영부담이 커진다는 기업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너도 나도 '가족친화기업' 선언

최근 들어 CJ제일제당 외에 삼성카드,LG유플러스 등 민간 기업은 물론 관세청,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공공 기관까지 속속 가족친화기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올 들어서만 모두 33개 기업 및 공공기관이 여성가족부의 '가족친화인증기업'으로 선정됐다. 시행 첫 해인 2008년부터 올해까지 인증서를 받아든 기업만 모두 67곳(누계 기준)으로 해마다 인증기업 수가 늘고 있다. 직원 복지를 확대해 회사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 것.

중소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올 들어 10개 기업이 정부 인증을 받았다. 터치스크린패널 검사장비 제조업체인 엠아이케이21은 자율 근무,시차 출근 등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권세환 엠아이케이21 대표는 "주간 의무근무 시간만 맞추면 하루 근무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자율근무제의 경우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과 연구개발담당 직원들에게 인기가 높다"며 "2008년부터 가족친화 경영방식을 도입한 결과 매출도 2007년 107억원에서 작년에는 150억원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여성부가 시행 중인 가족친화기업인증은 △시차 출 · 퇴근,재택 근무 등 탄력근무제 △배우자 육아휴직,직장 보육지원 등 출산 · 양육 지원제 △부모 돌봄 서비스,가족 간호휴직제 등 부양가족 지원제 △근로자 건강 · 상담 프로그램 등 근로자 지원제 등 가족친화 경영을 적극 실천하는 기업들에 부여한다. 인증을 받은 기업은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청에서 시행하는 9개 사업에 참여할 때 최대 5년간 가점 혜택 등 인센티브를 받는다. 인증마크를 기업 광고 · 홍보에 사용할 수도 있다.

◆생산성 · 만족도 동반 상승

가족친화기업들의 가장 큰 변화는 노동 생산성과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가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인증을 받은 교보생명은 2003년 1억3000만원이던 1인당 생산성이 지난해 1억7000만원으로 30.7% 높아졌다. 이 회사는 3세 미만 유아가 있는 직원에게 출퇴근이 자유로운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작년에 인증받은 KT 역시 출산의료비,유아보육비 등을 지원하면서 출산 후 직장 복귀율이 99%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가족친화 평균 성적표는 아직 '낙제점'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분석한 가족친화지수 측정 결과에 따르면 전체 1202개 기업 · 기관의 가족친화지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49.2점이었다. 실제 국내 전체 보육시설(3만5550개) 중 직장 보육시설은 370개로 전체의 1% 수준이다. 국 · 공립 보육시설도 1917개로 전체의 5.4%에 불과하다. 이복실 여성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은 "시간제 일자리가 정착돼 있는 네덜란드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72.6%(2008년 기준)로 한국(53.9%)보다 높고,노동생산성 역시 7만7409달러로 한국(5만7204달러)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은 가족친화경영이 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한국경제·여성가족부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