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11일부터 17일까지 짧은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출장 기간 중 수년간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새판짜기가 핵심이다. 이 회장의 '광저우 구상'은 한마디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람도 바꿔야 한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자신의 측근을 뒤로 물리고 젊은 인재들을 등장시켜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이 지난 10년간 21세기 변화를 대비해 왔지만 곧 닥쳐올 변화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강조해 왔다. '현재의 삼성이 갖고 있는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는 지적이었다.

이 회장은 수년 전부터 창조경영과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업을 언급해 왔다. 전문 경영인들에게도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의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이며 창조적 제품은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관리와 전략'에 머물러 있는 삼성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려면 인적쇄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 회장의 결론으로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냐를 사업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현 풍토로는 21세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발동했다는 해석도 있다. 재무라인을 중심으로 한 인사들을 퇴진시키는 게 그 이유다.

이 회장은 1987년 총수로 취임했지만 1993년 신경영을 추진할 때까지도 그룹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주변 인사들은 대부분 아버지인 고 이병철 회장 사람들이었다. 이 회장은 신경영을 추진할 당시 이를 "나는 월급쟁이의 생리에 많이 속아왔다"는 말로 표현했었다. 따라서 과거의 실세를 퇴진시킨 이번 결정은 자식들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