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 국내 경제 성장률이 5%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경제연구기관들은 이보다 낮은 4% 초 · 중반을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악화됐던 국내 경제가 올해 6% 넘는 고성장을 보이겠지만 내년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위기 이후 2년간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국내 경제는 올해 들어 고용이 빠르게 회복됐으나 '정상'수준으로 복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2%포인트 이상 낮아질 경우 경제 주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상당히 나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등 주요국의 긴축 가능성과 유럽 재정위기 지속,환율 하락과 고물가 등 대내외 불안요인들도 내년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내년 성장률 4% 초 · 중반이 대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1일 발표로 정부를 제외한 여러 연구 기관들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4% 초 · 중반으로 수렴됐다. 한국은행이 4.5%의 성장률을 제시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4.3%) 국제통화기금(IMF · 4.5%) 현대경제연구원(4.3%) LG경제연구원(4.0%) 등도 비슷한 수준의 전망치를 내놓았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보다 낮은 3.8%를 예상했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4% 초 · 중반이라면 잠재성장률 수준,즉 경기가 과열도 냉각도 아닌 상태로 볼 수 있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올 4분기까지의 좋은 흐름이 내년 상반기까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수치상으로 기저 효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진 만큼 내년 예상 성장률이 다소 낮아졌다는 것이다.

정부는 주요 경제연구기관들이 5% 미만의 경제 성장률을 예상함에 따라 내달 발표할 '경제운용방향'에서 4% 중 · 후반의 성장률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성장률 전망치를 책정할 때 내부 추산 작업과 더불어 유력 경제연구기관들의 전망을 많이 참고하기 때문이다. 내년 경제전망을 발표하기 위해 최근 가동된 거시경제 태스크포스(TF)에는 재정부 관료 외에 민간 연구소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환율전쟁 등 각종 불안요인 부담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경기를 하락시킬 수 있는 7가지 변수를 제시했다. 대내적으로는 △수출주력 산업의 경기 둔화 △심리 위축에 따른 투자 부진 △가계부채 부실화 △남북관계 긴장 지속 등 4가지를 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선진국의 재정여력 약화 △환율 · 무역 전쟁 지속 △미국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이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됐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IMF가 한국이 내년에도 G20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은 4.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러 대내외적인 불안 요인들이 경기 침체를 가져올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OECD도 "세계 8대 수출 국가인 한국은 세계 경제 여건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특히 수출의 3분의 1 수준을 의존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와 환율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우려했다. 주택시장 침체와 맞물려 있는 가계부채 부실 역시 무시하지 못할 긴장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OECD는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이 대부분인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 상승시 예상보다 소비가 크게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상흑자 대폭 줄듯

KDI는 경제성장률이 현재 경기사이클상 정점 근처에 와 있기 때문에 내년부터 본격적인 성장 둔화를 우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2012년 이후에도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이 계속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며 "건실한 성장 기조가 내년에도 계속 이어지는지 좀더 두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내년 경상수지 흑자는 빠른 수입 증가세로 올해(320억달러) 절반 수준인 152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KDI는 전망했다. 상품수지 흑자 역시 426억달러로 올해보다 107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기 회복의 선봉이었던 수출의 역할이 크게 축소된다는 것이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경상수지 흑자국은 이를 적정한 수준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기로 결정한 만큼 경상흑자 감소를 장기간 감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OECD도 한국의 2012년 경제성장률을 지난 5월 4.8%에서 이달 들어 4.7%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