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작년 12월 모금액이 목표액에 도달하면 100도가 되는 '사랑의 온도탑'이 112도를 기록했다고 자축했다. 목표액은 25억원이었는데 28억원가량 모였기 때문이다. 인천모금회는 회계장부에 시민의 성금 중 일부인 978만8000원을 온도탑 제작에 썼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 온도탑은 해마다 재활용된 것이었다. 인천모금회는 2006년엔 1430만원,2007년 999만원,2008년 1150만원을 각각 온도탑 제작에 썼다고 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인천모금회는 또 한사랑캠페인을 하겠다며 명판 100개를 제작 의뢰,297만원을 썼다고 장부에 적었지만 실제로는 9개만 인수했다. 부풀려진 장부에서 남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 기부문화의 대표주자였던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온갖 비리의 온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돈을 냈던 기업과 시민들은 큰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998년 16개 사회복지법인이 모여 만든 법정 모금 · 배분 전문기관이다. '사랑의 열매'와 '사랑의 온도탑'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8년에는 2702억원,작년에는 3318억원이 각 지역에서 모금됐다.

보건복지부가 21일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모금회는 이렇게 모인 시민의 성금을 '주머니돈이 쌈짓돈'이라는 식으로 마구 사용했다. 2006년부터 지난 9월까지 업무용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들여다 보니 단란주점 · 유흥주점 · 노래방에서 124번에 걸쳐 1996만8000원이나 결제가 이뤄졌다. 화환이나 선물을 사는 데도 12건 150만8600원이 쓰였다.

지난 3년간 모금회가 182회에 걸쳐 내부 워크숍 비용으로 지출한 3억4891만원 중에도 엉뚱한 항목들이 다수 끼어 있었다. 워크숍과 상관 없는 스키장,래프팅,바다낚시 비용 2879만8000원이 고스란히 성금에서 빠져나갔다.

서울 · 부산 등 9개 지회는 워크숍에 가서 유흥주점 나이트클럽 등에서 26번에 걸쳐 498만4000원을 썼다. 자체 감사를 해야 할 중앙회 감사 직원들이 감사 대상인 지회와 '업무 협조'를 한다며 노래방과 맥주집에서 243만8500원을 쓴 것도 적발됐다.

경북모금회는 차량지원사업을 하면서 중앙회의 지원기준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여 기존 차량소유 복지기관에도 차량을 중복 지원했다.

이 같은 비리가 알려지면서 기부문화는 찬바람을 맞고 있다. 당장 올해 사랑의 온도탑은 설치되지 않을 예정이다. 모금회에 따르면 모금회 직원의 각종 비리 등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지회마다 소액기부를 철회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현재까지 모금액은 지난해보다 약 20억원 정도 줄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어떤 기관보다 깨끗해야 할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총체적인 비리를 저지른 데 대해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며 "선진국과 같이 모든 지출 내역을 인터넷에 띄우는 등 제도적인 감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P사 사장은 "매년 일정액을 기부해 왔는데,비리 보도를 접한 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다른 기부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황해석 복지부 감사담당관은 "공동모금회는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다는 취지에 따라 정부의 관리감독권 행사가 제한돼 있다"며 "공익법인으로서 더 높은 공익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