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원전 르네상스'…韓ㆍ佛ㆍ日이 시장 주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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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리치 WNA 총장ㆍ이재환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대담
2035년까지 1000기 신설…원전 식민지 시대도 온다
한국기술 세계 최고 수준…수출 전략도 올바른 방향
전문인력 양성 시급한 과제…핵연료 재처리 큰 문제 안돼
한국기업 국제무대선 미흡…경쟁하되 협력자세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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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430기 정도의 신규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최근에는 이 수치를 '2035년까지 1000기'로 높여 잡았습니다. "
존 리치 세계원자력협회(WNA) 사무총장은 "전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 붐이 크게 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재환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과 가진 대담에서다. 이 협회가 내놓는 '전 세계 신규 원전 건설 전망치'는 세계 각국이 원자력 정책을 수립할 때 핵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리치 총장은 "100년 전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확보 경쟁을 벌였듯 앞으로는 원전 강국들이 전 세계를 누비는 '원전 식민지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며 "한국은 프랑스 일본과 함께 이 시대를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WNA는 원자력 분야 세계 최대 이익단체로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전 세계 36개 회원국의 180여개 원전 관련 기업을 회원사로 거느리고 있다. 국내에선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문화재단 등이 회원사다. 리치 총장은 한국전력 등을 신규 회원사로 유치하기 위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이 이사장과의 대담은 지난 18일 서울 노보텔앰배서더호텔에서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이재환 이사장='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적으로 원자력 붐이 일고 있습니다. 원전은 발전 단가가 낮아 경제적일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측면이 부각된 결과라고 봅니다.
▼존 리치 사무총장=그렇습니다. 최근 협회 차원에서 회원사들의 자료를 토대로 2010년부터 2100년까지 전 세계 신규 원전 건설 수요를 분석해 봤습니다. 그 결과 21세기 말까지 적게는 3000기,많게는 1만기의 신규 원전이 건설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가깝게는 향후 25년간 1000기의 원전이 건설될 겁니다. 기존 전망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라서 우리도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이 이사장=한국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전을 처음 수주했습니다. 원전 수출 경쟁에서 후발주자에 해당하는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리치 총장=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최적의 원전 설계 기술과 저렴한 가격,신속하고 효율적인 시공,안전한 운영 능력을 두루 갖춰야 합니다. 한때 원전 수입국이던 한국이 이제 최첨단 원전 기술을 국제 무대에 소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로 도약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이사장=한국의 유망 수출지역은 어디라고 보십니까.
▼리치 총장=한국은 이미 목표를 갖고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UAE를 비롯해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리투아니아 등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추진한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향후 10년이 무척 흥미로운 시기가 될 것입니다. 100년 전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확보를 위해 전 세계에 배를 띄웠다면 앞으로는 원전 강국들이 전 세계 원전 시장을 누비는 원전 식민지 시대가 펼쳐질 겁니다.
▼이 이사장=사용 후 핵연료 처리를 어떻게 할지가 한국의 고민입니다. 2016년이면 기존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이거든요. 최근 한 · 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선 한국이 대안으로 제시한 파이로프로세싱(핵무기 개발 위험 없이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공법)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리치 총장=파이로프로세싱은 분명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모든 가능한 기술을 검토해 봐야 합니다. 저는 한국이 사용 후 핵연료 처리와 관련해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이 갑자기 핵 무기를 보유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죠.한국은 오래 전부터 '핵 무기 없는 세상'을 지지했습니다. 핵 무기 숫자를 늘린다고 안전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사용 후 핵 연료 처리 문제를 핵무기 확산과 연관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이 이사장=원전 건설 붐과 함께 원료인 우라늄 수요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성 높은 우라늄 광산은 캐나다 호주 카자흐스탄 등 일부 국가에 편중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라늄 부족사태가 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리치 총장=솔직히 우라늄 공급난에 대해선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라늄도 다른 광물 자원처럼 시장에서 계속 공급이 늘어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25년 후면 우라늄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식의 우려를 제기하지만 그런 우려는 아마 5년,10년,20년 뒤에도 똑같이 나올 겁니다. 우라늄 가격이 상승하면 기업들은 새로운 우라늄 광산을 찾게 될 것이고 여기서 신규 공급이 충분히 이뤄질 겁니다. 우라늄이 아니더라도 대안으로 플루토늄 기술이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이사장=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30년간 중단된 원전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지난해 밝혔습니다. 최근 중간선거에서 패배했는데 미국의 원전 정책에 변화가 생길지 궁금합니다.
▼리치 총장=사실 미국이 그동안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던 이유는 스리마일 사고보다 천연가스 가격이 너무 쌌기 때문입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높은 원전 건설의 매력이 떨어졌던 셈이죠.최근에는 천연가스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중간선거 결과가 미국의 원전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나 우파 정당은 환경 피해보다 원자력 수용에 더 유연한 게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입니다. 민주당 정부와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초월해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이사장=한국의 원전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때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리치 총장=한국 기업들이 국제 무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른 기업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여전히 개별적으로 행동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예컨대 WNA 이사진에는 미국 웨스팅하우스,프랑스 아레바,일본 미쓰이,러시아 테넥스 등 원자력 업계 대표주자들이 포진해 있지만 한국 기업인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제무대의 협력이 '경쟁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공격적으로 경쟁하되 다른 해외 기업과도 협력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이사장=세계 원전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이 원자력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합니다. 한국 정부는 2020년까지 2만4000명의 원전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대책을 최근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리치 총장=맞는 말씀입니다. 원전 연구 인력이나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WNA는 강력한 비전을 가진 원자력 업계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매년 여름 '세계원자력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여기선 원자력 분야의 세계적인 트렌드와 환경 에너지,핵확산금지조약(NPT) 등을 폭넓게 이해하고 대국민 홍보를 할 수 있는 원전 분야 리더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정리=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존 리치 사무총장은
주한미군 복무 '지한파'…한국 농구대표팀 코치도
1960년대 말 한국에서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지한파 인사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1965년에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한 뒤 한국에는 대위 계급을 달고 1968년 부임했다. 미 8군 소속으로 2년 정도 근무하면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에서도 복무한 경험이 있다.
존 리치 사무총장은 한국과 농구로도 인연을 맺었다. 웨스트포인트 재학시절 학교 대표선수로 뛰며 동부 대학리그에서 1965년 올해의 선수로 선발될 정도로 뛰어난 농구선수였다. 졸업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 · 철학 · 경제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옥스퍼드대 농구팀을 지도하며 영국 대학리그에서 두 번 우승을 일궈냈다.
그는 한국에서 근무하던 1970년 미 8군 대표 농구선수로 뛰며 남다른 농구실력을 뽐냈다. 한국 농구계 인사들은 그를 한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위촉했다. 이후 7개월 동안 한국 국가대표팀을 가르쳤던 그는 한국에서 복무 기간이 끝나면서 코치직을 그만둬야 했다. 리치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많이 배울 수 있었던 한국 선수들은 그의 한국 복무 연장을 요청했을 정도였다. 당시 한국의 농구스타인 신동파 선수는 "리치 코치는 한국팀이 방콕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평가했다.
군 복무를 마친 리치 사무총장은 1972년 윌리엄 풀브라이트 전 상원의원이자 외교관계위원장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22년간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서 동서관계 및 핵무기통제 분야 전문가로 일했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핵실험금지기구의 미국대사로 7년간 활동했다. 당시 1995년과 2000년 북 · 미 핵협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2001년 세계원자력협회(WNA) 사무총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