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영변에서 경수로 건설현장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고 돌아온 미국의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 지난 20일 방북보고서를 공개했다. 다음은 백악관에도 전달된 보고서의 요지.

◆영변 핵과학연구센터

이번 방북은 북한이 지난해 9월 선언한 우라늄 농축 기술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현장을 보고 싶다는 우리 요청에 따라 지난 12일 이뤄졌다. 3시간30분 동안 시설을 안내받았다. 몇 명의 기술자와 북한 원자력총국 인사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영변 핵시설을 경수로로 바꾸고 우라늄 농축을 발전시키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25~30㎿ 경수로 현장

과거 5㎿ 실험용 원자로가 있었던 장소였다. 최근 위성사진을 통해 건설공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였던 곳이다. 현장에서 가장 깊이 파인 곳은 대략 7m 깊이,가로와 세로 각각 40m,50m가량이었다. 기술자는 100㎿ 용량 수준으로 설계됐다고 말했으나 에너지 전환효율이 30% 정도라고 밝힌 것을 감안해 25~30㎿급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북한 측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추진했던 1000㎿ 경수로 규모에는 훨씬 못 미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수로는 과거의 흑연감속원자로와는 다른 대형 경수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완공 목표일은 2012년이라고 말했다. 북한 측은 충분한 천연우라늄 광석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라늄 농축공장 목격

우리는 약 100m 길이 공장의 2층 제어실 전망대로 안내됐다. 미국에 돌아와 위성사진으로 보니 120m 길이의 청색지붕 건물이다. 전망대 창문으로 내려다 본 광경은 놀라웠다. 1000개가 넘는 깨끗한 현대식 원심분리기를 볼 수 있었다. 기술 책임자는 지난해 4월 원심분리기 설치가 시작됐으며 수일 전에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원심분리기는 지름 20㎝,높이 182㎝로 추정됐다. 북한 책임자는 공장에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이 개발한 'P-1형 원심분리기냐'라고 묻자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책임자는 "모든 재료는 국내에서 생산한 것이지만 네덜란드의 알메로나 일본의 로카쇼무라의 원심분리기를 모델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농축 용량이 "연간 8000㎏-SWU"라며 "평균 3.5%의 저농축 우라늄을 제조할 수 있고 건설 중인 경수로는 2.2~4%의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설비 있을 수도

제어실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었다. 미국의 현대적인 처리 시설에 견줄 만한 수준이었다. 제어실 뒷면에는 작동 수치를 나타내는 LED 패널이 있었고 컴퓨터 통제장치들이 가동되고 있었다.

나는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이렇게 빨리 구축할 수 있었던 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 시설들이 실제 가동되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그들은 단호하게 "그렇다"라고 말했다.

북한 주장대로 연간 8000㎏-SWU 규모의 농축 역량이라면 연간 최대 2t의 저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고,시설을 전환하면 최대 40㎏의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할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 시설과 같거나 더 큰 용량을 가진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이 별도의 장소에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한편 헤커 소장과 함께 영변 핵시설을 견학한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객원연구원은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설비를 보고 너무 충격적이어서 잠시 정신이 나갔었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