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국 LA의 디즈니 가정 암센터를 방문했다. 말로만 듣던 새로운 개념의 '스마트 병원'이 과연 어떤 것인지 직접 보러 간 것이다. 확실히 모든 시설이나 인테리어가 훌륭했고,동선과 공간을 환자 중심으로 설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돋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돋보인 것은 병원에 대한 관념을 과거의 개념에서 완전히 탈피해 송두리째 바꾸겠다는 발상이었다. 이제 병원은 찾아오는 환자를 수동적으로 맞아 치료하는 공간이 아니라 환자를 주체적 행위자로 만들고 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현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환자에게 전자태그(RFID) 기술을 이용한 인식표를 부여하고 각 환자에 대한 정보를 모아두면 그 환자의 동선에 따라 각자에게 최적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특정 환자에 대해 그가 무슨 암 치료를 받는지,건강 상태가 어떤지,무슨 음악과 색깔을 좋아하는지 등을 데이터베이스(DB)화함으로써 그 환자가 방사선 치료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조명 색깔이 바뀌고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 헬스케어는 세계적으로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도 의료정보화를 많이 추구해 왔다. 전자의무기록시스템(EMR)과 디지털영상정보전송시스템(PACS) 등을 구축한 국내 대형 병원들은 스스로를 첨단 디지털 병원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의료진에 보급해 검사 결과 체크와 간단한 처방이 가능한 스마트 워크플레이스를 구현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첨단 디지털 병원 구현으로 무엇이 좋아졌을까?

물론 업무적 효율성이 개선되고 행정적인 처리가 빨라졌으며 통계 작업이나 진료 결과 처리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졌다. 하지만 환자,즉 소비자의 편의성과 만족도는 정말 나아졌는가? 디지털 병원이 '앙꼬 빠진 찐빵'처럼 느껴지는 근본 원인은 종이와 필름이 키보드와 모니터로 바뀌더라도 디지털화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자동적으로 높여주지 않고 환자 중심의 프로세스를 저절로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말 그대로 환자 즉,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병원 정보시스템과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다. 그것이 디지털 병원을 넘어선 스마트 헬스케어이다. 스마트 헬스케어는 디지털 기술의 접목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소비자에게 정보의 주도권을 넘기는 작업이자 투명하게 프로세스를 공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의료 문화와 관행에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전제하는 것이다.

스마트한 정보로 무장된 스마트한 환자들은 스마트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원하고 있다. 한국의 병원도 단순한 정보화,디지털화를 넘어 '스마트한 환자들을 위한 스마트 병원(Smart Hospital for Smart Patients)'으로 도약해야 할 때가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이왕준 <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lovehospital@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