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 '불씨'가 또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엔 현대건설 인수ㆍ합병(M&A)이 아닌 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질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간 분쟁 가능성으로 불씨가 옮겨 붙는 모습이다.

◆쉰들러그룹이 일으킨 '현대중공업VS현대그룹' 시나리오

이 시나리오는 그간 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지분(31.3%)으로 분류돼 온 쉰들러그룹(Schindler Deutschland)이 최근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식을 장내·외에서 공격적으로 매입(약 6%)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롯됐다.

23일 금융감독원 등 관련업계에 따르면 쉰들러는 지난주 한국프랜지공업으로부터 이 회사가 보유 중이던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2.74%를 1주당 8만2000원에 사갔다. 이는 거래 당일(11월19일) 주가 6만9600원보다 17.8% 할증된 가격이다. 쉰들러가 가격 프리미엄까지 얹어 주고 지분을 늘린 것이다. 물론 장내에서도 3% 가량 지분을 더 늘려놨다.

이에 대한 시장전문가들의 반응은 대부분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현대로지엠 등 현대그룹의 현대엘리베이터 보유지분이 약 50%에 육박하고 있어 쉰들러의 적대적 M&A 가능성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 쉰들러가 그간 현대엘리베이터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최초 지분매입(2006년 3월, 경영참여) 이후 실제 경영에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프랜지공업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프랜지공업은 "매매가격이 맞아 지분을 넘긴 것일 뿐이며, 먼저 쉰들러 쪽에서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쉰들러가 왜 그렇게 비싼 가격에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했는 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일단 한국프랜지공업은 이번 매매로 4배 이상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현대엘리베이터 매입가격이 1주당 2만원을 밑돌았던 것.

쉰들러가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지분매집을 지속하자 '현대중공업그룹과 쉰들러가 손잡고 현대엘리베이터를 지배하려는 속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일부 M&A 전문가들의 의문이 제기됐다.

◆이번엔 왜 현대중공업그룹인가?…키포인트는 '현대로지엠'

이 시나리오의 '키포인트'는 바로 현대로지엠(옛 현대택배)이다. 현대로지엠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보유지분 22.6%, 11월15일 기준)이고, 현대로지엠은 다시 현대상선의 지배를 받고 있다.

특히 현대로지엠의 등기임원들 임기만료가 잇따라 다가오면서 이사선임을 위한 주주총회에서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현대상선의 최대주주 지위)간 의결권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으로 연결(순환출자)돼 있다. 여기서 연결고리가 가장 취약한 곳이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 분기보고서(2010년 9월30일)상 현재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는 현대중공업그룹(25.47%)이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 지분 약 8%를 보유 중인 현대건설 인수는 현대그룹의 지상 최대 과제였다. 만일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 쪽으로 인수된 뒤 현대상선 지분 8%가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넘어갔다면 현대그룹 전체가 경영위기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한 M&A 전문가는 "현재 현대상선의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현대로지엠의 이사선임 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나아가 만약이라도 현대중공업이 쉰들러와 손을 잡을 경우 현대엘리베이터를 지배할 수도 있는 시나리오가 가능해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로지엠의 이사회는 현재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사회 의장)을 제외하면 사내이사 3명이 모두 1~4개월 이내에 임기가 만료된다. 최용선, 민동준 사외이사는 2012년 3월까지다.

현대로지엠 분기보고서 등에 따르면 박재영 대표이사와 하종선 사내이사는 오는 12월18일, 황현택 사내이사는 내년 3월26일에 임기가 끝난다.

또 현대로지엠은 이사선임 시 보통(일반)결의로 하고 있다. 일반결의는 주주총회에 출석(발행주식수 4분의 1이상)한 주주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통과된다. 즉,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현대로지엠 이사회 구성에 참여할 수 있고, 현대로지엠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다.

일부 기업들은 경영권을 철저히 방어하기 위해 이사해임뿐 아니라 선임 시에도 '특별결의(발행주식수 3분의 1이상, 출석주주의 3분의 2이상)' 사항으로 두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로지엠은 이 마저도 불가능한 처지에 놓여있다. 정관변경이 특별결의 사항이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