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으로 태어나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라다. '학문의 무덤'이라며 대학을 자퇴하다. 군 복무 중 데뷔작 '유년시절'을 발표하다.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다. 늦게(34세) 결혼하면서 나이 어린 신부(18세)에게 방탕했던 과거를 담은 일기를 보여줘 놀래키다.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 등 수많은 작품으로 얻은 명성에도 불구,문학보다 종교에 매달리다. 비폭력 · 금욕을 강조하는 '톨스토이 주의'를 주창,1901년 러시아정교회에서 파문당하다. 1910년(82세) 저작권 문제로 아내와 다투고 가출한 지 열흘 만에 폐렴으로 숨지다.

19세기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의 생애는 이렇게 복잡하고 모순 투성이다. 중년 이후 내내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면서도 타고난 귀족으로서의 안락한 생활을 떨치지 못했고,48년 동안 함께 살면서 8남매를 둔 아내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이상과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허덕이면서도 근 60년간 잠시도 쉬지 않고 작품을 썼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섭도록 세밀한 관찰과 사실적인 묘사로 인물의 내면은 물론 풍경 하나하나에까지 놀라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롯한 만년작은 방황과 갈등 속에 긴 세월을 산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사람의 내면엔 무엇이 있는가,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그것이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보살핌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랑으로 살아간다. '

톨스토이 100주기(20일)가 지났다. 러시아에선 톨스토이역(그가 세상을 떠난 옛 아스타포보역) 수리에 따른 재개관식과 그의 마지막 며칠을 소재로 한 영화 상영(모스크바 35개 극장) 정도의 행사뿐 TV 특집방송이나 기념전시회도 없이 조용히 치러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탄생 200주년(1999년)에 '푸시킨의 날'을 지정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대우다. 정치 · 종교계 모두 금욕과 상속 반대같은 그의 사상을 불편해 하는 탓이라고 한다. 유언대로 비석 하나 없이 묻힌 그가 시간이 가도 나아지긴커녕 더 험하고 그악스러워지는 세상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