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46년 동안 주나라를 반석에 올린 왕이 바로 선왕(宣王)이다. 그의 뒤를 이어 유왕이 즉위한 지 2년째 되던 어느 날 지진이 일어나자 당시 백양보(伯陽甫)란 자가 "양기가 자리를 잃고 음기 아래 있으면 반드시 근원이 막히고,그 근원이 막히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면서 주나라의 멸망을 예언했고 그 시기는 10년 이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폭군의 기질이 다분했던 유왕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재위 3년 되던 해에 포사라는 희첩이 생기자 그는 주지육림에 빠져들었다. 포사는 포(褒)나라의 여인.이 여인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계기에 대해 사마천은 매우 신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 왕조의 뒤를 이어 은나라가 등장하고 다시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3대 동안 전해 내려온 한 상자가 있었는데,그 속에는 소장하고 있으면 나라에 길조가 든다는 용의 침이 있었다. 금기사안은 어떤 경우든 함부로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왕의 바로 직전 왕인 폭군 여왕이 말년에 이 상자를 열었다. 여는 순간 침이 궁궐의 뜰로 흘렀는데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것에 개의할 여왕이 아니었다. 여왕이 아녀자들을 발가벗겨 큰 소리로 떠들게 하자 침이 문득 검은 자라로 변해 후궁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때마침 후궁에 있던 예닐곱 살가량의 어린 계집이 자라와 마주쳤는데 시집 갈 나이가 되어 아비도 없이 아이를 잉태하여 그 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그 후궁은 두려워 아이를 내다 버렸다. 그런데 유왕의 선친인 선왕 때 어린 여자애들이 부르는 동요가 있었다.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箕 · 콩대)로 만든 화살 통이 주나라를 망하게 하리라."
마침 이 노래를 들은 선왕이 길에 활과 화살 통을 파는 부부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더니 그들을 즉시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들 부부는 도망을 치다 우연히 길에서 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 거두어 길렀다. 그녀가 바로 후궁이 버린 아이였다.
이들 부부는 결국 포나라에 몸을 맡기고 숨어살았는데 계집아이를 버리지 않고 길렀다. 그러고는 계집의 이름을 포나라에서 성장했다고 하여 '포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여자를 좋아한다는 유왕에게 죄값으로 바쳤다.
유왕은 포사를 보자마자 반했고 어느새 백복(伯服)이란 아들을 얻었다. 기쁜 마음에 태자 의구(宜臼)를 폐위하고 왕후마저 폐위시키더니 포사를 왕후로 삼고 백복을 태자 자리에 두고자 하니,주나라 태사 백양(伯陽)이 역사책의 기록을 들어가며 주나라가 망할 것을 탄식했다.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포사는 잘 웃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려고 유왕은 온갖 방법을 다 썼으나 끝내 웃길 수 없었다. 단 한 가지,거짓으로 봉화를 올리고 북을 쳐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사방의 제후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다가 헛걸음치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웃었다.
포사의 미소에 넋을 잃은 유왕은 이런 짓을 여러 차례나 일삼았다. 더구나 유왕은 아첨만 일삼는 괵석보에게 나라의 정치를 맡기고 신후를 쫓아내는가 하면 태자를 폐위했다. 그러자 민심이 들끓었다.
결국 무너진 민심을 등에 업고 신후가 적국인 증(繒)나라,서이(西夷),견융족과 함께 유왕을 공격했다. 유왕이 봉화를 들어 군대를 소집했으나 제후들의 군대는 도우려 하지 않았다.
신후는 여산(驪山) 밑에서 유왕을 살해하고 포사를 사로잡았으며 폐위된 태자 의구를 왕으로 옹립하니 이 사람이 바로 평왕(平王)이었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