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친척이 양복 한 벌을 선물했다. 품질이나 색상이나 나무랄 것이 없었다. '너무 싸서' 몇 벌 샀다고 했다. 2만5000원.상상할 수 없는 가격 아닌가. 우리가 사는 21세기가 이렇다. 공급 과잉,가격 하락 그리고 저성장.스티브 잡스의 시대는 바로 이 시기에 열렸다. 세계가 온통 저성장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잡스는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혁신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도 연달아서.그 궁금한 비결을 분석해 놓은 것이 바로 이 책 《스티브 잡스 무한혁신의 비밀》이다.

저자 카민 갤로는 잡스만 10년 이상 연구한 전문가다. 그는 잡스의 혁신 여정이 1997년 애플이 내놓은 광고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이 광고는 아인슈타인,밥 딜런,간디,존 레논,에디슨,킹 목사 등을 보여준 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이어지고 있는 폭발적인 혁신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잡스의 비전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증거다. 음악 · 영화 · 도서 · 휴대폰 산업은 그에 의해 재창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잡스의 혁신 비결을 일곱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세상을 바꿔라''창의성을 일깨워라''제품이 아니라 꿈을 팔아라'''노'라고 1000번 외쳐라''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라''스토리텔링의 대가가 되어라' 등이다.

각 항목마다 잡스가 실행한 방식을 분석했고 유사한 방식으로 성공한 기업의 사례와 일반 사례를 풍부하게 담았다. 정곡을 찌르는 잡스의 명언도 차고 넘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혁신이야말로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다. " "우리는 비전을 놓고 도박을 한다. 남을 따라하는 제품을 만들 바에는 차라리 도박이 낫다. " "나는 우리(애플)가 했던 것은 물론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 "사람들은 PC 그 자체보다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한다. "

세상을 놀라게 한 혁신 상품은 그 놀라운 결과 때문에 사람들을 주눅들게 한다. 보통 사람들은 지레 겁먹어 혁신을 '천재의 일'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혁신의 출발은 시장의 압박이다. 변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데 어찌 천재들에게만 맡길 것인가.

'잡스 따라하기'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단 책을 읽을 때 공격적으로 읽어야 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항상 물어야 하고,반대로 실제 일을 하면서는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라는 얘기다. 잡스 스타일로 사고하고 비전을 세우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나아가 '미칠' 정도로 사고의 문을 넓히는 연습도 해야 한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 가장 위험한 일은 바로 위험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정상적인' 회사들이 21세기 들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그것이 안전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는 얘기다. 분명한 것은 21세기 들어 이미 '새로운 잡스'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쏟아져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 말이다. 우리 기업들이 더 큰 꿈을 꿔야 하고,더 미쳐야 하고,더 가벼워져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연구가답게 쉽게 쓴 것이 장점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깊은 뜻을 가리는 단점이 있다. 인용된 자료들을 찾아가면서 읽으면 성과가 몇 배로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창의성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이유로 혁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영자나 비즈니스맨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다. 스스로 이런 생각이 들면 성공이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해 보긴 했나?"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