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7월 일본 교토의 교세라그룹 회의실.임시 임원회의를 소집한 이나모리 가즈오 당시 사장은 100년 동안 전기통신사업을 독점해온 일본전신전화공사(현 NTT)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제2전전(현 KDDI)을 설립키로 한 것이다. 일본 국내 통신은 NTT가,국제통신은 국제전신전화주식회사(KDD)가 독점하도록 규정한 공중전기통신법을 개정해 민간기업도 전기통신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큰 리스크를 감수하고 전화사업에 나서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하나,일본의 전화요금을 낮추고 싶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전화요금은 미국보다 열 배나 비쌉니다. 이것은 전전공사의 독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전기통신 시장에 정당한 경쟁을 일으키고,전화요금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고도 정보화사회도 더 빨리 올테고 일본의 경쟁력을 높여 국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것입니다. "

이사회의 동의를 얻은 이나모리는 교세라가 가진 약 1500억엔의 자금 중 1000억엔을 투자하기로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이나모리의 경영철학을 믿고 전전공사 직원 등 통신 기술자 19명이 모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들 무모하다고 비웃었다. 27세에 교세라를 창업해 세계적인 전자부품 회사로 키운 이나모리지만 전화사업에는 문외한인 데다 전화사업과 전자부품 생산은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32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독점기업.자본과 기술,인력의 열세는 명백했고,여론도 냉담했다. 그러나 이들은 몇 년 후 전화요금을 절반 이하로 내리는 데 성공했고,제2전전은 설립 10년 만에 일본 최대 민간 통신회사로 성장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도전자》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회장과 그를 믿고 나선 젊은 도전자들의 이야기다. 중계기지 건설,주민들과의 토지보상 문제 등 난관이 꼬리를 물었지만 이들은 열정적으로 일했다. '값싼 전화요금'을 위해 NTT보다 도쿄~오사카 구간은 25%,전체적으로는 20% 싸게 요금을 매겼다. 시외전화서비스를 개시한 1987년 제2전전이 확보한 가입신청자 수는 경쟁사인 일본텔레콤,일본고속통신을 압도했다. 서비스 개시 1년 전부터 본격적인 영업체제를 구축해 대리점을 조직하고 고객을 확보한 결과였다.

제2전전은 도요타자동차 등 강적들과의 경쟁을 뚫고 2000년 4월 KDD,일본이동통신과 합병해 KDDI로 새출발을 했고,NTT에 이은 일본 2위의 통신회사이자 최고의 민간 통신회사로 성장했다. 저자는 "제2전전의 성공은 일본 사람들의 생활과 경제활동에 엄청난 혜택을 안겨주었다"고 평가한다. 전화요금이 대폭 하락한 덕분에 일본 전기통신 시장 규모가 전전공사 독점 때의 5조엔대 초반에서 15조엔대로 세 배 이상 커졌다는 것이다.

지난 2월부터 급여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일본항공(JAL)을 살리기 위한 구원투수(회장)로 일하고 있는 이나모리 회장의 기업관은 두고두고 새겨둘 만하다. "기업은 경영자의 꿈을 실현하거나 경영자의 배를 불리는 도구가 아니다. 직원들과 그 가족의 장래를 챙겨주고 나아가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처럼 크고 고매한 대의명분으로 기업을 경영할 때 그 회사는 건전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